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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근교수와 함께 떠난 제29차도시탐방대 이야기

올해 첫 탐방이다.

옛 진해를 찾아가는 도시속의 어촌탐방이 오늘이야기이다  

2013년 2월 23일 토요일,

반짝추위는 저만치 물러갔는지 햇살이 참 좋은 오후2시경,  경남대 10.18광장 모임장소로 갔다

한사람이라도 더 왔더라면 차편이 매우 어중간하게 될뻔한 운좋게도 모닝과 마티즈 2대의

정원에 맞춘 인원, 10명이 모였다.

△ 탐방대장 유장근 교수님과 박영주샘이 각각 준비해온 자료를 검토한다.

△ 2010년 제10차에 떠났던 지난 코스와 박영주씨가 준비한 코스를 함께 이어서 가보도록 하겠다는 탐방대장으로 부터 인사말이 있은후 각각 차에 몸을 실었다.

 

진동시장을 향한 좌회전 신호를 넣으면서 차안에서 질문이 던져졌다.

삼진이라면 진동, 진북(지산), 진전(오서)이라고 하는데,,왜 진서라고 하지 않나요 했더니,

진서는 양전(양촌)과 합하여 오늘날의 진전면이 되었다고 한다.

행정개편이 있을때마다 변방의 설움은 늘 이름을 빼앗긴다는 뜻이죠. 지금의 마창진통합으로

창원시가 된것 처럼..

 

진해현 관아를 가기위해 진동을 들어섰는데 모닝차와  서로 엇갈려 주행한 차이로

내가 타고 있던  마티즈 일행팀은  진동면 동촌냇가길로  들어가게 되어 그 덕분에

일요일 정월대보름행사를 앞두고 진동민속문화보존회에서 준비한 달집과 큰줄을 엮어놓은 모습을 잠시 즐기게 되었다.

진해현은 마산합포구 진동, 진북,진전면 일대에 있었던 조선시대 지방행정 단위였다고 한다.

지금부터 시간을 거슬러  옛진해를 알아보자,

 

 

▽ 진해현 관아/현감들의 집무를 보던 동헌

 

▽진해현 관아 중심으로 왼쪽에 위치한 객사는 1985년 불이나서 소실되었고 그 흔적을 말해주는 넓덕한 돌(기단)만 남아있다. 객사는 주로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숙소, 혹은 손님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탐방대장으로 부터 진해현의 역사와 자연경관등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진해는 고대부터 살기좋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해안가 군사적 방어지대의 성격이 상당히 강했던 곳이이며 그리고 조선시대의 진해에서

함안으로 가는  교통요지의 주요통로였으며, 거제, 충무등 따뜻한 남쪽 유배지로 인기?있었던 곳이라고도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2년6개월동안 이곳으로 유배와서 머물렀던 김려는 진동지역의 풍물과 물고기이야기에 관해 조사하여  우해이어보라는 한국 최초의 어보의 저술을 남겼는데 그 속에

말의 음경과 같은 개불(해음경)에 대한 자세한 모양새 소개글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특히 수산물 집산지로 우산잡곡이란 책에 해산물을 잡는 진해지역 수산업에 대해 언급되어있다.

 

▽ 동헌입구앞에는 제각기 다른형태의  비석들이 세워져있었다.

옆으로 돌아 현재 진동면사무소 마당에 남아있는 동헌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곳은 조선 순조 32년(1832) 진해현감 이영모가 세운 관아건물로 지방업무를 보던 곳이다.

△ 이 기둥밑을 보십시요,,신기하지 않습니까.  기둥아래 흠들이 분명 생길터인데 이렇게  기단과 딱 맞추어 틈이 없게 세울수 있었는지, 바로 '그랭이질' 이라고 하는 깎는기법을 사용했다는점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대단한 겁니다.-> 정규식선생님의 건축기법을 설명중..

△동헌 오른쪽에 있는 군령을 출납하는 5칸의 사령청과  뒤 켠의 굴뚝

 사령청 뒤를 돌아가니 어른4명의 팔을 뻗은 둘레를 지닌수령이 200년이 된 푸조나무가

      긴 세월의 역사를 품 위세를 갖추고 있었다.

동헌 맞은편에는 말을 사육하던 3칸의 마방이 있었다.

△ 진해현의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다웠다는 것을 한 눈에  알수 있는 우산팔경!!

 

우산팔경(牛山八景)은  우산현 시기에 이 고장풍경을 읊은 시로 작가는 미상이나 오랜 

세월동안 애송되어 내려온 이 땅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1999년 2월 진동팔각회원 일동이 뜻을 모아 유서깊은 옛 진해현 동헌 마당아래

시비를 세웠다고 한다.(경남도민일보 참조).

 

 아름답고도 아름다워라~ 구름, 달빛, 석양, 갈대,만조, 가랑비, 종소리여!!!

1. 석문조운 - 우산입구(지금의 태봉앞)에 문과 같이 생긴 바위에 아침 구름이 떠오르는 풍경.

2. 추봉추월 - 교동(동헌)뒷산 소리개 같이 생긴 높은 봉우리에 밝은 가을달이 솟아 오르는 풍경

3. 요주낙안 - 요장 앞바다의 갈대밭에 기러기가 떼지어 날으는 광경.

4. 광암만조 - 광바위(廣巖) 부근 각양각색으로  바닷가에 저물게 밀물이 드는 아름다운 풍경.

5. 연포귀범 - 돛을 단 고깃배가 돌아오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

6. 웅도어화 - 능지머리 바다에 수없이 늘어져 고기 잡는 배들의 등화.

7. 죽전세우 - 죽전(오서리)의 광활한 죽림에 세우 내리는 풍경.

8. 의림모종 - 깊은 산아래 있는 의림사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저무는 종소리.

 

▽ 다시 차에 몸을 싣고 삼진의거8의를 기리는 창의탑, 창의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 1919년 4월3일은 장날이었다고 한다.

창의탑은 차에서 내려 현장을 보았지만 창의비는 쌩쌩달리는 차도 옆이라 위험하여 자료로만

만날수 있었다.

 

▽ 다음은 1억년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고현리 공룡 발자국화석을 밟아보기로 하였다.

두발로 걸어다닌 흔적이 너무나 선명한 공룡발자국 화석

누군가 돌틈아래 촛불 밝혀놓은 모습,, 소원성취하세요

  율티마을-> 창포만->

▷ 창포만은 이수인선생님의 < 고향의 노래> 의 배경이라고 한다.

정규식선생님과 함께 노래를 불러보았다.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열면 하얗게 눈서리 내리고

나래풀은 기러기는 북녁을 날아간다.

아~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 서보라

고향길 눈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길 눈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소포마을-> 시락마을

△ 동진대교에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왼쪽으로는 잔잔한 물결의 출렁임만 있을뿐 고요함만 깊이 내려앉은  바다가 안쪽으로 뻗어져 있었다. 저 끝은 당항포라고 한다.

 

△ 시락마을 앞바다를 바라보며 박영주선생님으로 부터 소포면 시락출신인

화가 정상복씨의 이야기 한편을 들었다.그는 화가이면서 1950년대 말,  송지식(뻘에 나무를 꽂는 방식) 굴양식을 하던 중  일본서적을 보고 연구를 거듭하여 시락 앞바다에서 수하식 굴양식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마지막 이동지는 정곡마을이다. 77번 종점. 마산의 끝이라고 합니다. 알고계셨나요?^^

 

시간은 벌써 오후5시 50분, 짧았지만 허투른 시간없이 쭉이어진 탐방일정을 모두 마치고

신마산댓거리 영남식당으로 옮겼다.

△ 미식가 유장근교수님의 단골가게라고 한다.. 전화번호 앞자리가 2자리인것을 보니 꽤나

오래 된 곳인것 같다. 가게안은 매우 좁지만 사람들이  가득했다. 평소에도 앉을 자리고 없다고 한다

이 곳을 처음 온 사람들은 푸짐한 아구수육과 해물 가득한 된장찌개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불룩하게 생긴 아구대창의 모습에  " 이게뭐예요" 라고 묻는다..

가위로 뚝뚝 짤라, 살짝데친 콩나물과 미나리를 어울려 초장에 찍어먹는 맛은 기가찬다.

약간의 배고픔이 오는 시간,, 막걸리 한잔으로 도시탐방을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