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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와 옛 남성동파출소

다가오는 3월15일은 제53주년 3.15의거일을 맞이한다.

 

두어해 전부터 3그날이 오면

김춘수시인의 베고니아 꽃잎처럼이나의 시를 만나게 된다.

 

일상을 창동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나는,

이제 사 여기저기 숨어있는 오랜 마산의 자유, 민주, 정의를

위해 싸운 서럽고도 외로운 희생의 혼을

마음에 안아 보게 되면서 조심스레 다가가 보고자 한다.

 

호흡을 가다듬어 찬찬히 시를 읽어본다.

 

 남성동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대로상에

또는

남성동파출소에서 북마산파출소로 가는 대로상에

너는 보았는가··· 뿌린 핏방울을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

1960315

너는 보았는가··· 야음을 뚫고

나의 고막도 뚫고 간

그 많은 총탄의 행방을···

남성동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대로상에서

또는

남성동파출소에서 북마산파출소로 가는 대로상에서

이었다 끊어졌다 밀물치던

그 아우성의 노도를···

너는 보았는가··· 그들의 애띤 얼굴 모습을···

뿌린 핏방울은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선연했던 것을···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마산사건에 희생된 소년들의 영전에-국제신보 1960.3.28.)

 

 

도시의 해가 조금씩 넘어가는 시간에

지금 난, 옛 남성파출소 앞에 서서

반세기 전 흑백필름의 과거시간을 돌려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이곳은

3.15의거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의 장소였다고 한다,

창동길 거리에서 수많은 군중시위대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 한다.

지역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피끓던 투쟁의 역사는

머리 속에서 점점 잊혀진 채 오늘도 사람들의 발길은 오고가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3.15의거는 지난,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지역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국가기념일로도 제정이 되었고 국립민주묘지의 추모공간도 만들어져

3·15의거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할 민주화의 역사 교육장으로서

성역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한편,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서는 옛 민주당사 앞 보도에 3.15발원지 동판을

새겨 놓았으며, 해마다 315일이면

오동동 상인연합회와 민간단체가 함께 민주마산 만세를 외치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3.15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남성동 옛,파출소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3년 전 서성동으로 남성지구대 장소가 이전되면서 창동치안센터라고

이름이 바뀐 간판만 덩그러니 걸려있고  문은 이미 굳게 닫혀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없다.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고 있기에

 

오늘날까지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이 곳을 우리는 

현재와 미래의 의미를 되살려 어떻게 함께 풀어나갈 것인가.

이 공간에 대한 역사적 재해석을 통한 장소성을 위한 대안은 없는 것인가,

 

사람들의 접근성이 보다 쉬운 이 곳 남성동파출소를 

창동의 새로운 역사자원으로 재탄생되어 마산민주의 작은 아카이브공간으로 

적극 제안하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마산의 근대시간으로 거슬러 창동 여기저기 숨어있는 시간여행을 통해

역사, 문화 예술의 희노애락을 하나하나 담아내어 디자인 되어간다면

250년전 골목을 돌아 돌아 창동예술촌과 함께

창동은 다시 몸과 마음이  머물러 갈 수 있는 새로운 문화컨텐츠 공간이 되어

창동역사 탐방코스로  발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