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우신장여관, 그곳에 지금

수많은 인파로 밀려다녔던 지난 날(70년~90년),,

창동속에는 여관, 여인숙이 꽤나 많았다.

엄청난 젊은 청춘남녀들의 생활중심의 공간이었던 지난시간,

" 아지매 ~ 방하나 주이소~  아이고 ~ 우짜겄노 방이 없는데....

수많은 손님이 들나들었던 여관은 청춘남녀의 운명을 바꾸게 했던 시간,

그리고 첫사랑의 추억마저도 희미한 기억의 시간이기도 하다.

   여관의 경험은 대부분 한번쯤 있을법..

장미여관의 봉숙이, 노래가사가 대신한다.

야~ 봉숙아 말라고 집에 드갈라고
꿀발라서 놨드나  나도 함 묵어보자
아까는 집에 안간다고 데낄라 시키돌라 캐서
시키놨드만 집에 간단 말이고
못드간다 못간단 말이다
이 술 우짜고 집에 간단 말이고
못드간다 못간단 말이다  묵고 가든지 니가 내고 가든지
우우우 우우 우우

야 봉숙아 택시는 머할라 잡을라고
오빠 술 다 깨면  집에다 태아줄게
저기서 술만 깨고 가자 딱 30분만 셔따 (쉬었다)가자
아줌마 저희 술만 깨고 갈께요
으흐흐 흐흐 흐흐흐

못간단 말이다 묵고 가든지  니가 내고 가든지
사랑을 찾아서 사람을 찾아서 오늘도 헤메고 있잖아
사랑을 찾아서 사람을 찾아서  오늘도 헤메고 있잖아~~

...다시,,

지금, 우신장여관을 만났다.(1987~2018)

창동옛 시민극장 골목 들어서자마자 다시 오른쪽으로 향해 골목을 따라들어가면

옛, 우신장여관 건물이 우뚝 있다.

올해 새롭게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재민 주인장이 도색을 하여 깔끔해졌지만,,

그동안 이곳은 무척이나 주변이 어둡고 사람들의 발길이 드나들기 싫은 퇴색된 곳이었다.

그리고 나의 기억 (2002~2015?)으로는 당시 우신장여관을 영업했던 남자주인은

매일 아침이면  늘 부시시한 모습으로 GS25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소주 두어병을 사들고

 여관으로 들어가는 모습,,

아주머니는 아들을 혜림학교 등하교시키는 모습,,,

골목 끝 창동거리에 녹슬고 낡은 우신장여관 간판을 꺼내놓여진 모습...

성행했던 시간은 잘 모르겠지만 창동상가의 쇠락과 함께 여관도 거의 영업이 되지 않았었다.

달방으로 전락하고 쾌적하지 못한 공간은 더 이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곳이 되었었다.

최근,,,, 여관의 건물주가 1층으로 사업장을 옮기면서 골목 속 건물외벽을 무료 도색해주면서

창동희망나무, 가족나무 골목의 새로운 변화의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빈방을 선뜻 내 주어 청년작가들의 새로운 실험이 준비되었다.

16개의 빈방을 활용하여 우신장이 남기고 간 흔적을 제각기 다양한 작품으로  이 곳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얼마전 한 단체의 방문객 어르신들에게 보여드렸더니,,

 " 보이소 ~ 해설사님,,, 여기를 왜 들어가라 했는교,,  아무것도 볼게 없는데...ㅋㅋ 이러신다..

 화려한 전시가 아니라  이게 뭐지?

 익숙한 전시가 아니라 도대체 이기머꼬?

..... 작품은 가슴으로 느끼는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