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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를 間보다

더 없이 푸르고 맑은 가을하늘과 햇살은 저절로 몸과 마음을 떠민다.

어제 오늘 지역 속에 온전히 일상을 맡겨 여행길처럼 집을 나섰다,.

평소 걷는 사람들에 가는 냥 급히 도시락을 준비하고 주전부리 계란,.고구마까지 삶아 챙겨 등에 작은 무게를 지닌 채....

 

경남도민일보 앞에는 대형버스 한 대가 독자와 기자와의 세번째 만남으로

진해 근대유산탐방을 나들이 하는 참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낯 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인사를 나누었다.

아저씨랑 같이 안 오셨어요?”

행사 광고를 보자마자 마음만 앞서 세 사람을 신청했었는데

출발당일 두 사람을 취소시키고 말았으니, 함께 참여하고자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행사 진행자에게 죄송함이 앞섰다.

 

진해... 벚꽃구경 두 어번 와 봤다는 기억 말고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얼마 전 ‘100년의 유산방송을 보고는 일제강점기. 근대역사 이야기 흔적이 곳곳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곳을 보고는 더욱 흥미롭게 눈과 귀가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행사에 선뜻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진해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해딴에 김훤주기자

 

 


 


 


처음 도착한 곳은 새로 단장된 웅천읍성,

크고 작은 돌로 쌓여진 긴 성벽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다시 반원형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의 보호를 받으면서 동문 見龍門을 올랐다.

마을이 한 눈에 펼쳐 보였다.

성내 목사와 객사가 있을 법한 곳에 지금은 진해 웅천고등학교와 초등학교가 세워져있었다

성벽 한 켠 아래쪽에는 축성 당시 책임자의 이름도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조금 이동하여 입구 앞 안내표시가 매우 낡고 오르기도 힘들법한 계단과 정리 되지 않은 오르막 산길을 잠시 오르니 덩그러니 방치 된 표지판과 제포진성지 터만 있었습니다 .

눈 앞에 펼쳐진 마을은 예전에는 모두 바다였다고 하고 일본인들이 이곳에 살면서 조선과 무역을 했다고 합니다.

성지 위에는 잘 다듬어진 잔디와 집 한 채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만난 마을아저씨는 마침 만나게 된 기자들에게 이 곳에 대한 해결되지 못한 하소연을 말하면서 성실한 제보기사를 약속했습니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어 예약 된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줄 전혀 몰랐답니다

 


 


 


 


 


 


 


 


 

 

 

 

 


 

 

 

 

1912년에 지은 진해요항부 해군병원장 관사였던 선학곰탕.

한눈에 보이는 문 입구 간판탕곰 鶴仙 풍경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집 안 모든 게 일본식 건축모습이 그대로였다.

낡디 낡은 나무이음새. 검은 빛이 맴도는 반들반들한 마루 바닥.

아직도 시간이 흐르고 있는 낡은 괘종. 걸려져 있는 징과 종을 흔들어보는 아이들,,,

깔끔하게 잘 끓여진 곰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오래 된 시간이 그대로 멈춰있는 옛 시가지 장옥거리를 따라 걸었다.

낡은 문. 창틀, 간판.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가게들이 외려 신기하고 정겹게 다가왔다.

 


 


 


 


 

 

예전에 신마산 거리에도 이런 집들이 즐비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헐어지고 새 건물들이 그곳에 들어서게 되면서 일본인들의 옛 중심 상가거리와 주택들의 모습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어 역사로 재 구성, 재 발 견 될 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운 마산을 생각해보았다;

중원로타리에 닿아 장난감 도서관 앞 동상을 둘러보았다.

동상 뒤에 새겨진 글을 보고 시월유신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음을 알게 되고는 유신

헌법을 떠 받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도서관 앞이라 책을 들고 있는 것 아니었는가 하고 참가자 누군가는 막연한 생각했었다고 그리고 대부부의 시민들도 무심코 지나면서 그런 의미의 동상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라고.

그래서 동상 앞 화단을 아예 걷어버리고 시월유신의 역사를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외려 좋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바로 옆으로 발길을 옮겨 러시아풍으로 건축된 일본의 초기 서양식 건축양식건물인 진해우체국 앞에 섰다. 이제는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입구 왼쪽 화단에는 사적291호로 지정 된 표지석과 큐알코드가 새겨진 안내판이 있었지만 진해우체국 상세한 정보가 담겨진 큐알 코드를 찍어볼 수가 없었다.

화단 바깥으로 나와 세워져 있어야 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만두를 즐겨 먹었다는 중국집 원해루앞으로 갔다.

이 곳은 1956년에 장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건물 전면에 위.아래 두 개가 걸려있다

그 당시 영문과 함께 쓰여진 퇴색되고 낡은 간판이 위에 걸려있다.

으뜸 . 전화번호. 양 옆 나무간판 영해루. 짜장면 한그릇이 4,500원다.

 

손가락을 향한 건너편에는 빨간 3층의 육각정. 요정이기도 하였다고 하는 수양관이 한 눈에 보였다.

 

 


 


 


따뜻한 가을햇살을 등지면서 진해군항 마을역사관으로 다시갔다.

이 곳은 노인회관을 매입하여 진해 원도심 중앙동 마을역사와 진해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아 한 눈에 쉽게 알 수 있도록 사진, 소품들을 꾸며놓은 곳이었다. 향토문화해설사는 방문객들에게 진해의 긴 시간이야기를 친절히 안내해주어 낯선 여행자들을 위한,,그리고 중앙동 주민들의 지역알기에 매우 소중한 공간과 노력이 엿보여 무척 부러웠다.

 


 


 


 

 

 붉은 베고니아꽃이 빙 둘러 피어있는 북원로타리앞 이순신장군상 앞으로 갔다.

여기서 김훤주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동상이다. 서울 광화문 앞에 서 있는 이순신장군의 얼굴과 이 곳 이순신장군의 얼굴을 한번 생각해보라고. 거만함보다는 매우 인품이 있어 보이지 않느냐고..

 

 


 


 


 


 

 

마지막으로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이 진해 방문하여 기념으로 쓴 친필 시비를 보기위해 남원로타리로 갔다.

버스에 내려 로타리 가운데 세워져있는 시비에 어른아이 할 것없이 가까이 건너 가기에는 매우 위험한 현장이었다. 로타리를 둘러 어느 한 곳도 건너갈 수 있는 표시선이 없었다.

멀리서만 보고 가까이 가지 말라는 뜻인지 알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시비를 빙 둘러 있는 휑한 돌로 디자인 된 경관. 그리고 시비의 위쪽이 깨져있는 것이 탐방객들에게 한 눈에 발견 되었다.

 

 

반나절 걸어서 만나는 진해 옛 시가지를 둘러 보면서 일본이 남겨놓은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는 테마코스는 일상의 여유를 찾기에 충분한 것 같다.

지역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세상 밖 배움터에 아이들과 함께 즐기면서 애정을 가질 수 있게 보다 섬세하게

배려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뒤풀이 자리에서 창원에 정착한 인생길에 두 가지 선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그 하나가 바로 경남도민일보 독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11

구독자의 한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행사 진행을 맡아 해설안내를 해 주신 김훤주기자님의 수고로움에 감사드리면서 경남도민일보가 마련한 독자와 기자의 만남이 내내 이어지기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