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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는 방문신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교와 기관단체들의 원도심재생의 활발한 골목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즐기는

,,,감동의 시간들,,

짧은시간, 긴여운의  지속적인 공유를 위해 언제나 열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창원시도시재생 선도사업 과정. 현황..뉴딜정책 대비 현장의 노력들,,

골목에 숨어있는 이야기, 포토존,,, 맛,,,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 모든것이 창동의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지난달 경남광역 여성새로일하기 센터에서 연락이 닿아

창업을 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직접듣는 창업이야기 기획을

창동에서 도움을 받고자 한다고 하여

mj스위티를 소개하여 차민정 대표의 커피가게를 꿈꾸며 준비한 이야기 시간을 가졌는데 무척 좋았다는 평가에

다시 연락이 온거였다.

이번에는,,

카페창동 가게를 추천하였다. 물론 사장님이 흔쾌히 하겠다고 마음 열어주어서 시작된

수요일 아침. ,,,,

카페창동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9년내내 커피가게를 꿈꾸었다.
여기있는 소품들은 우리에게는 가족이다
그때부터 차곡차곡 오랫동안 가족이 되기위한 시간을 위해 준비해왔다...
남편이 퇴직하면 꼭 가게를 채려주겠다고 했던, 그래서
말하는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1년을 꼬박 전국투어를다녔다.오직 맛있는 커피를 위해..

이 공간에 마음을 정하고 여기 오랫동안 묶은 집기 모든걸 버리는일이
엄청났다. 하나하나 직접 작업하여 3개월 걸렸다
지금은 손님들의 환한인사를 받을때 참 행복하다

차를 마시는 동안 최대한 편안하게 쉬는 공간이 될수있게

음악을 준비하고 작품도 배치하고,,,
따뜻한 사람의 기운이 있는 매력,,,커피맛의 매력 편안한 장소의 매력 ~~
저희는 6개월만에 다 채워져지고 있고
오늘도 우리 부부의 꿈을 쌓아가고 있다.

김두철대표는 올해 환갑이라고 한다.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다. 칠순이 되면 이 공간에서 사진전시회를 할것이라고 한다.
힘든시간을 잊은채
김미현 카페창동 안주인의 낭랑하고 행복한 목소리에 모두가 이끌린 시간이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창원시 문화관광국의 사업으로

불종로 (동광교회-> 신한은행)가 빛의 거리로

많은 사람들의 포토를 즐기는 공간으로  탄생되었다.

홍보는 순식간에 알려져

2016년 12월23일~25일은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로 창동거리를 펄떡거리게 하였다.

모두가 한결같이 말한다.

"이야~ 80년대 창동같다야,,,

활짝 문을 연 금강미술관은 아마도 1년내 들락거릴 수요가 하룻밤에 다녀갔고

토끼모양 솜사탕 하나로 하루25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니,,이틀동안 500만원@@

군밤아저씨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내내 군밤을 구웠고...

산타할아버지는 아이들의 기쁨이 되어주고..

버스킹팀들의 목소리도 신나게 노래를 불러주고

연이틀 내내 사람의 기운이 넘친 시간이었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 양해광 사진

창동 고려당 거리에서 예술촌으로 들어오는 초입에는 쪽샘골목이라고 부르고 있다..

80년대 전설 같은 쪽샘이 있어서 인가...당시 골목 안에는 동동주 가게가 골목 곳곳에 있었다.

이야,,,,이야,,,,,이게 언제 쩍 사진이고,, 입가에 반가운 미소가 연신 맴돈다.

내도 오늘 이 자리에 나올라꼬 옛 앨범을 뒤적여 보다가 명함이 있더라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정말 감회가 깊네예..간판을 가만히 들여다 보더니,,여기 사진은 80년 중반쯤 되겠네요

창동분식도 원래 이자리가 아니었는데 위 골목에 올라와 있는 것도 그렇고

간판을 보니 두자리 전화네요. 처음 시작했을 때가 79년도였습니다

22112으로 시작한 번호가 80년대 후반에 46국으로 바뀌었고 90년대에는 246국으로 변경되었

던 시절이었다 아임미까....

2-2112 ..백색 전화였지요. 그 당시는 전화번호를 서로 주고팔고 하던 시대였고 전화 한 대 가격이

무려 180만원이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이시더

 

먼저, 전화번호 이야기를 해볼까예~

 

우리가게 번호하고 롯데크리스탈 번호하고 헷갈려서 있었던 이야기임미더.

지금 마산의료원 신축으로 변해버린 옛 마산시 장군43-6

80년대 일본계 등 외국 기업이 마산수출자유지역(현 자유무역지역)에서 호황을 누리던 마산 부흥기에는 마산·창원지역 대표 호텔로 각광을 받아 객실은 빈 곳이 없었고 식당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롯데 크리스탈 호텔(798월인수) 대표 전화번호가 2국에 1112 (45-1112. 2001년 폐업) 였습니더.

 

한창 인기가 있었던 숙박시설과 나이트클럽에 외국사람들의 이용이 많았던 지라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는 00~` (거기 롯데 크리스탈인가요?) 암튼 이 번호 때문에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더.

그래서 220만을 준다고 팔아라는 제의도 받았지만

돈을 얹어 준다고 해도 내가 팔수가 있겠습니까 .

나도 전화 하나로 장사를 다했던 시절이었는데 대표 전화를 팔고 나면 장사를 못한다고 당연히 생각했었지예. 손님이 미리 와서 앉아 있으모 친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전화가 오면 손님들을 바꿔주고 했으니까 전화가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었습니더.

 

어떻게 쪽샘 가게를 하게 되었슴미꺼~

 

우연하게 가게 임대가 나와 있는 걸 보고 알아보니 천만원 보증금에 월세 백만원이더라구예. 처음에는 겁이 나서 친구하고 내하고 둘이서 동업 할라꼬 마음먹었는데 아부지가 사실을 알고 동업은 절대 하지말라고 엄포를 놓아서 고마 각자 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위쪽 건물 (다다)과 아래(쪽샘)건물이 나란히 나와 있었는데

나는 어느 곳을 선택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친구가 먼저 위 가게를 선택했습니더. 그래서 자연스레 나는 아래 지하 공간을 하는걸로 했었지예. 인테리어 시설도 같이 하고 개업은 며칠 사이를 두고 각각 장사를 시작했습니더...

다다 김용해. 아주 장사에 감각이 있는 친구였슴미더.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시내 곳곳이 젊은이들로 넘쳐나던 바로 그 시절 그 때는 돈을 몰라 가지고 내가 그렇게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지예 돈을 셀 시간이 없었습니더. 찌르릉 소리나는 파란 금고가 있었는데 돈이 불룩하게 올라와서 문을 닫을 수가 없어서 쌀 포대에 돈을 넣어놓고 또 넣고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생각을 하면 엄청난 시절이었지예. 인자는 그런 날이 안 올낌미더

 

전두환 정권시절 야간통행금지가 있을 때 아임미꺼~

12시만 되면 술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울렸던 공포의 사이렌 소리에 달리던 차도, 상점의 불빛도, 취객의 발걸음도 일순간에 사라지면서 온 동네가 갑자기 정적이 감돌면서 골목 가게마다 기능은 한마디로 올 스톱 되고

개미라도 한 마리 얼렁거리면 길 저쪽에서는 사정없이 호루라기를 불어대고 미처 가게 문을 닫지 못한 상점은 그 소리에 놀라 정신없이 셔터 문을 내리고. 방범대원과 경찰의 눈을 피해 두더지처럼 뒷골목을 돌고 돌아 귀가 길을 재촉하던 시절아임미꺼 불빛이 새 나가지 않구로 커텐을 막고 방범대원들을 먹여가면서 숨은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더.

 

우리가게도 일단 12시까지 장사하고 나면 청소도 해야 하고 집에 갈 때 돈을 챙겨 가야하기 때문에 방범대원들에게 돈을 쫌 주면 보디가드처럼 집으로 가는 동안 보호해주기도 했습니더.

부림시장 모퉁이 한국투자신탁이 있었습니더. 현금 1억을 맡겨놓았는데... 부모님 계신 집이 남지였는데 제사지내러 가는 날이면 항상 지점장이 직접 차를 태워주고 했습니더 ,,

 

그때는 돈의 중요성을 몰랐습니더. 날만 새면 돈이 들어왔으니까 말임미더.

우리가게 쪽샘은 DJ만 없을 뿐이지 음악실만 작은 것을 마련해서 항상 음악을 틀어줬습니더. 그때 가장 인기 있었던 손님들의 노래 신청곡이 뭔지 암미꺼~ 전인권의물 좀 주소였습니다. 원래는1974년 발표한 포크가수 한 대수가 만든 곡이지예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술 좀 주소 술 좀 주소 목마르요 술 좀 주소

 

위 골목에 송강정이라고 유명했던 막걸리집이 있었는데 창동에서는

우리 가게하고 두 곳이 아주 유명했슴미더. 송강정은 동동주가 오리지날이었고 우리가게 동동주는 가리지날(가짜)이었습니더. 손님들이 달짝 그리하이 억수로 맛있다고 했는데 사실은 북면 막걸리를 사가지고 와서 단술을 타서 조제했던 술이었슴미더. 우리 모친이 단술(식혜)을 굉장히 잘 담았지예.

가게밖에 빈 박스를 산더미처럼 쌓아두면 주변 사람들이 내보고 하는 소리가 하루에 우째 이리 막걸리를 많이 팔수 있노하고 늘 이상하게 생각했슴미더. 송강정은 동동주가 너무 독해가꼬 많이 먹지도 못했지만 우리가게 동동주는 내가 무~봐도 억수로 맛있었습니더. 내보고 비법을 알려 달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슴미더.

동동주는 배합이 중요하지예

단술을 많이 타도 안 되고 작게 타도 제 맛이 안 나오거든예. 하하하하

막걸리가 굉장히 땡기면서 단술까지 타놓으니까 여자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다른 가게 동동주는 밥알이 허리멍텅하게 푹 퍼져 있는데 쪽샘 동동주는 단술밥알은 통통하게 떠 있으니까 이야~이거 쥑인다 우찌 담은기고 하고 서로 물어봤슴미더.

  안주도 정말 맛있게 잘 했었지예.그 맛을 따라올 곳이 없었슴미더.

지금은 매립되었지만 옛 홍콩빠 옆에 있었던 잠수기 조합에 아는 행님이 있어가지고 경매 받은 낙지를 바로 들고 와서 쪼사 놓으면 싱싱하게 살아있는 것을 해놓으니 얼마나 맛있겄슴미꺼

그라고 죽은 거는 양이 줄어드는데 살은(살아있는) 거는 촉감이 아주 좋았다. 주방 아줌마가 양념을 숙성해서 잘 버무리 놓으면 동네 사람들도 저녁때가 되면 냄비를 들고 와서 반찬 한다고 사가지고 가고 했슴미더.

점심때도 냄비 들고 오는 사람들. 아뭏던 낙지볶음은 엄청나게 많이 팔맀슴미더.

  기억에 나는 손님이 있겠네예~

보통 술집은 오후5시에 문을 여는데 우리 가게는 아침10시부터 손님이 왔다.시장을 9시에 보고 10시쯤이면 일하는 사람들과 아침밥을 먹고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학생들이 땡땡이 치고 오는 기지예 대학생이 참 많이 왔슴미더

그런데 학생들이 첫째 돈이 없다보니까 주민등록증, 시계. 책을 맡기고

술을 많이 먹었슴미더. ㅎㅎ이만기도 외상값 굉장히 많았는데 ~하고 사장님의 말이 떨

어지자 마자 아직도 안 갚았지예 하고 물었더니 맞슴미더 안 갚았슴미더.”그라고 우

리가게는 씨름선수들도 많이 왔습니더. 그때는 돈이 다들 없었던 시절이고 어려웠다 아

임미꺼.,

다다는 사실 쨉이 안 되었슴미더 장사가 잘 안되더라고예. 초창기는 막거리를 팔지 않았는데 우리 가게랑 같이 막걸리를 팔아보고 하더니만,,,,

우리가게는 오직 동동주 하나만 가지고 장사를 다했슴미더

안주가 굉장히 많이 나갔지예 우리집 안주를 먹기 위해 온 손님도 엄청났슴미더.

 

우리 가게가 인연이 되어 가꼬 결혼한 팀들이 많았슴니다.

다다는 테이블이 잘 짜여져 있어 스킨십하기가 힘들었지만

우리는 손님을 많이 받을라꼬 좁게 배열했다

지하 작은 공간이었지만 테이블에 전부 앉으면 40명 됨미더.

하도 손님들이 들어오니 둘이서 딱 붙어서 먹을 수밖에 없었지예

한잔 먹으니 그 당시 대나무로 장식한 다마(백열전구) 불빛아래 보모 얼매나 아가씨가

이뻐보이겄슴미꺼. 분위기까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짝(인연)이 되가꼬 결혼소식을 알려줘서 결혼식에도 5군데나 갔었슴미더.

 세월이 흘러 우연히 길에서 한 팀을 만났는데사장님,,우리가 쪽샘에서 만나 결혼했

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더

 

왜 쪽샘이란 이름을 지었슴니꺼~~..

 

경주에 가면 쪽샘 지역이라고 있었다. 그 당시 쪽샘이라는 이름의 느낌이 좋아서 가게

이름을 쪽샘이라고 간판을 달았다.

그 당시 막걸리집들이 아바이 맥주 빈 병에 막걸리를 부어서 팔았었다.

그런데 나는 로구로(나무로 깎은)로 만든 통에 쪽 바가지를 담가 주니

운치가 있다 아임미꺼. 로구로 잔이 참 예뻤었지예. 그런데 오는 손님마다 기념으로

가져 가삐가꼬 술잔도 쪽도 하루에 100개도 없어졌슴미더..

쪽을 제공해주는 집이 온 동네 전체가 조롱박 농사를 지었고 짓는 대로 다 주라해지예

 모양이 예쁜 게 굉장히 많이 나왔다. 술이 추가되어야하는데 쪽자가 추가 주문이 되고

했슴미더

그리고 술값 매상이 엄청 났슴미더 1통에 800원 안주 1천원

하루 매출이 70만원, 80만원이었다. 이 동네에서 제일 손님 많다고 소문이 났었다 하옇던 가게 문을 열자 말자 손님들이 몰려와서.

엉망진창으로 장사했슴미더. 손님이 계속 들어오니 우찌 장사했는지..

아침에 눈을 뜨면 어휴~ 오늘은 쫌 손님이 안 와야할낀데 하고 생각했다카모 말다핸거

아임미꺼 참말로 감당이 안 되었던 시절이었슴미더.

 

특히 시민극장,강남극장.태양극장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물밀 듯이 내려오면 감당이

 안 되었던 시절.사람들이 내가 하고나서 막걸리집이 몇 군데 생겼었다,고구려.영일레

븐 목선,.지금하고 다른 아나로그 시대. 밥먹고 술마시고 커피샵도 많았지만 주머니 형

편도 안좋았으니 커피숍도 안 그치고 바로 1차부터 우리 가게로 왔다. 

이 골목을 그 당시 창동 새 골목이라고 불렀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면예~,,

그 당시 정말 이 여자하고 밤을 같이 지내고 싶은데 돈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예? 하고 물어보니 오데 방이나 있슴미꺼 방을 빌리 준 게 아니고 그냥 가게서

 하룻밤을 자게 했다. 그 대신 조건을 제시 하는데 가게청소를 말끔히 해놓겠다고 하여

 가게서 잠을 자게 한 경우도 많았다...

더 중요한 것은 가게가 지하라보니 쥐가 있었다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사장님예~ 같이 누워있는데 쥐가 댕기가꼬 얼매나 놀랬는지 암미꺼.

  1224,31일 딱 두 번 통행금지가 풀린다

하루 맥주 판매 양이 57박스, 막거리는 15말을 팔았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팔았던 술병을 담아 밖에 박스를 내놓았더니

다다친구가 니 지금 이거 며칠 팔은 기고하고 물어서,,,

어제 저녁에 다 팔은 기다(판매한 거다) 라고 대답했더니

택도 아인소리 하지 마라. 우째서 이리 많은 양을 팔수 있노 했다.

한 개 알이키주까 24일 이브날 저녁 장사 하다가 전기가 팍 나갔는기라..

그때는 테이블이 없어 못 팔고 그랬는데 때 마침 정전이 되자 나가는 사람은 나가고

 불이 꺼지니까 좋다는 사람도 많았다.

갑자기 곳곳에서 쪽쪽쪽~ 소리가 났다. 바로 키스타임..,,

또 불이 들어 왔다.40개중에 10개 비었다. 손님 받고 또 내리고 올리고

내리고 올리고,,,산처럼 쌓아놓은 걸 보고 사람들마다 ,,,이야,,이야,,,,

오전10시 시작해서 저녁10시까지 24시간 풀로 장사했다.

  몇 살에 장사했슴미꺼,,,그 때가 36년 전 26살이었다.

  고 보면 제일 불행한거였다.그 돈이 남아 있으모 되는데 다 날라갔습니더.다른 사업도

많이 해봤지만 대부분 보증 서고 돈 빌려주고..,,

냉장고 하나만 사도 보증을 하던 시절이었다 아임미꺼

잘 나갔던 쪽샘.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10년 정도 핸 것 같습니다.

오래했지예...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어제부터 굵은 비가 내리고 있다.

이번주말까지 내린다는 날씨예고가 있다고 한다.

           낮12시

누야~` 밥무로 가자,,,

창원도시재생센터 직원들의 가장 화기애애한 시간은 역시  점심시간이다.

우산을 쓰고 잰 걸음으로 짬뽕집으로 향한다.

시간을 아차 못맞추면 자리가 없기에 많이 기다리기도 한다.

 

불종로 창동공영주차장 바로 옆 열정짬뽕은  주변 직장인, 일반 사람들의 맛집으로 인기다.

 

이 곳은 반 지하. 테이블도 6개정도..

오직,

짬뽕전문... 그리고 군만두가 아주 맛있다.

 

하얀육수의 하얀짬뽕과 굴짬뽕은 싱싱한 해산물로 국물이 매우 시원하다.

땀 줄줄, 콧물 줄줄나는 눈물짬뽕과 열정짬뽕 한그릇이면

숙취도 거뜬,

비내리는 날, 따끈한 짬뽕 국물이면 하루가 화끈하다.

 

작은 메뉴판을 보면 열정 火 짬뽕(붉은색)

 

불종거리는 불이 났을때 종을 쳤다는 종이 있었음을 의미함과 火짬뽕이

색으로 연상되기에 아마도 이 가게는 불종거리와 딱 맞닥뜨려지는 것으로 의미부여하여

장사가 잘 될수 밖에는 없는것 아닐까..

 

창동아지매의 열정마저도 짬뽕으로 대신하고 싶은 점심이었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2015.12.24 저녁7시

크리스마스 이브밤. 마산예총 주관으로 시민과 함께 하는

예술난장 참가자. 관객들로 창동거리와 골목에는 수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식당. 술집마다 손님들이 가득하고 삼삼오오 끊이지 않는 모습이 옛 창동을 추억하게

하였다. 이 날 행사는 특히.

1000여명의 플래시몹 참가자들이 거리방향마다 각각 가면, 목도리. 머리띠를 두르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행사를 의미있게 하였dmau

무대공연 젏은이들의 춤팀. 시민들이 " 예술, 도시를 감싸다" 행사를 환호하며

맘껏 즐긴 시간이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이브, 혹은  마지막날 타종식. 명절연휴가 되면

창동거리는 평소 발길이 없었던 시민들이 자연스레 창동을 찾아온다.

추억. 장소. 맛. ,,장소성이 유인하는 크나큰 힘이 바로 창동이다.

 

이번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함께 즐길수 있도록 기획을 한 것이

무척 의미가 있었으며 창동 거리문화의 새로운 킬러컨텐츠가 될 수 있도록 잘 이어지면

좋겠다.

레이저 쇼. 신나는 음악과 춤.  3개도시를 의미하는 가고파. 고향의 봄.

삼포로 가는길을 시민합창으로 마무리하면서 창동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따뜻한 겨울추억이 된 시간이었다.

 

 1997년 창동거리

 

 

2015년 12.24 창동거리

 

20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창동~너무 좋아요,,,

저는,,절대 창동 안 떠나요~

당당한 목소리, 밝은 미소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스위티 MJ사장님

 

창동에 온 지 1년7개월째라고 한다.

처음 이 가게를 계약할 때만 해도  이런 장사가 되겠냐고 갸우뚱했다고 한다.

지인들도  이렇게 물어봐요~  손님이 쫌 있나?  창동에 사람은 쫌 댕기나?

 

사람이 많이 드나든다고,, 이 곳을 본점으로 하고 2호점. 3호점 늘리고 싶은  꿈도 있다고

말한다... 건물하나 매입해서 창동에 영원히 머물거라고 한다.

제과제빵 수업을 위해 드나드는 회원도 꽤 많다.

실내 인테리어는 꼼꼼한 남편의 손길이 모두 담겨있다고..

 

위치는 창동분식건물 2층 (창동어울림센타 맞은편)입니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2013년 5월11일 오후2시 청소년문화존이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청소년문화존은  마산, 창원, 진해 3곳 동시에  (마산창동사거리와 창원용호동 문화의 거리, 진해석동근린공원) 진행된답니다. 

 

  청소년문화존은 여성가족부의 지원으로 창원시와 함께 마산청소년문화의 집과 창원흥사단, 진해청소년수련관이 주관하는 행사이며,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친숙하고도 대표적인 문화 공간을 조성해 동아리공연,  전시와 같은 문화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답니다. 

 

  특히 마산창동청소년문화존은 2008년 창동구도심공동화이후 상가활성화를 위해 거리문화행사로 처음으로

함께 했던 행사였답니다. 이 곳은 유독 상가거리중심에서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많은 어려움(차량통제 및 고음출력등,,)이 따랐지만 지역안에서 창동상가방문고객은 물론 지역시민들에게 청소년들의 문화를 쉽게 보여줄수 있는 기회가 될 뿐아니라  청소년층 고객중심의 점포에는 매출향상이 매우 상승되는 다양한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오늘 이 시간까지 6년동안 연 6~7회 행사를 진행해 왔던 그동안 평가가 우선되어 올해 처음 창원시청소년 대표 문화존으로 선정되어 올해는 개막식과 폐막식을 포함하여 15회 횟수의 행사를 진행하게 된답니다. 

 

  오후2시 개막식 행사는 매우 많은 참가자 청소년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개막식을 축하하기위해 kbs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김대성이 참석한다는 홍보에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모든 행사의 시작과 마무리까지 청소년들이 직접 행사를 도맡아 준비하고 진행합니다. 

 마산창동청소년문화존의 풍경을 함께 즐겨 보실까요?

 

 2013년 청소년문화존의 슬로건은 다와락입니다.

 (청소년은 모두 다 와라, 즐거운곳으로 ,, 이런뜻이겠죠)

 

△ 창원시 노인장애인청소년과 박진석과장님(제일오른쪽), 마산YMCA김휘안이사장님(가운데),

 그리고  여러관계자가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하였습니다.

 

 

△1부순서에서 사회자의 상품권이 따르는 퀴즈에 함성의 소리와 손을 드는 학생들,,



△1388아웃리치, 찾아가는 길거리 청소년상담입니다. 자원봉사자상담선생님들에게 상담을 받고

있답니다.

각부스마다 청소년단체의 각동아리들이 각각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국산품애용 캠페인을 알리고 있네예..우리 청소년들이 참 기특하죠...

청소년문화존 본부석의 풍경입니다.. 현장에서 자원봉사신청이 가능하구요..

청소년문화존행사 참여 및 도우미는 모두 자원봉사시간을 인정해 줍니다.

 

 

아름다운 거래를 알리고 있는 부스입니다. 공정무역커피를 시음하게 하고 토스트에 쨈을 무료로 발라주니 달콤한 맛에 서있는 줄이 끊이지 않네예..

 

  청소년자살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있네예. 

 저도 지나치지 않고 질문에 답하는 O /X에 스티커부착 참여를 했답니다.

 

 


만화동아리부스의 아이들의 웃음이 해맑습니다.

 

매월 둘째, 넷째주 진행되는 마산창동청소년문화존의 대표주관 단체는

마산청소년문화의 집 (055-252-8319, www.masan1318.com )이며, 봉사활동 신청도 누구나 받습니다.

 

주말, 창동거리에서 청소년들의 웃음과 끼를 함께 즐기러 많이 오세요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어제 도시재생법통과로 10년단위 체계적 도시재생계획만든다고 발표했다.

 

서울=뉴시스】이국현 기자 =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 중심의 천편일률적인 도시 재생사업 대신

10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해 실질적이고, 체계적으로 도시 활성화를 추진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국회는 30일 본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재석 193명 가운데 찬성 189명, 기권 4명으로 가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도시 재생에 관한 정책을 종합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신설토록 했다. 도시재생계획과 도시재생정책 등의 심의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는 지방도시재생위원회가 구성된다.

특히 국토교통부 장관은 도시재생을 종합적·계획적·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도시재생 기본방침'을 10년마다 수립하고, 필요한 경우 5년마다 내용을 재검토 하도록 했다.

아울러 도시재생계획의 수립 지원, 도시재생사업시행의 지원, 전문가 육성 및 파견 등을 위해 도시재생지원기구(중앙)와 도시재생지원센터(지방)가 설치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도시재생 활성화를 위해 도시재생기반시설의 설치와 정비에 필요한 비용을 보조하거나 융자토록 했다.

한편 국토부 장관은 도시재생 활성화를 위해 관련 정보 및 통계를 개발·검증·관리하는 '도시재생종합정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 도시재생사업의 촉진을 위해 건폐율, 용적률, 주차장 설치기준 및 높이 제한 등의 건축 규제에 대한 예외를 규정했다.

이 밖에 도시 재생이 시급하거나 도시재생사업의 파급효과가 큰 지역을 직접 또는 전략계획수립권자의 요청에 따라 도시재생선도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 
도시재생법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재생을 위한 기본 방침과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투입해 기존 단독주택과 다가구·다세대 기존 주택의 신축과 보수를 지원하고, 도로와 주차장 등 공공기반시설을 확충해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구도심의 재개발 재건축과 같은 도시재생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건폐율, 용적률, 주차장 설치기준 및 높이 제한 등의 건축규제에 대한 예외를 부여하고, 도로ㆍ공원과 같은 도시재생기반시설의 설치ㆍ정비에 필요한 비용 등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 국토부 정병윤도시실장님-> 마침, 어제 도시재생법이 통과되고 이렇게 방문하니 더욱 뜻깊다.

 그동안 돈(예산)문제가 확실하게 되어있지않아서  어려움이 많았으나 이제부터라도

 지역국회의원들의 힘을 빌려 예산이 함께 수반되어 실행가능할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줄것을

  당부하였다  

△창동예술촌아트센타2층으로 발길을 옮겨 김호준 마산예총회장님의 소장품 라디오 300여점이

전시되어있는 것을 보시고,,특히 100년전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영구적으로 사용할수 있는

다이야몬드 바늘, 돌로 만든음반위에 살짝올리니,,

멋진음악이 흘러나옴에 모두가 신기해 하였다.

이 모든 개인소장의 라디오를 박물관으로 재탄생되어 창동예술촌과 함께

전국의 방문객이 드나들수 있는 차별화된 컨텐츠로 될수 있게 창원시의 적극적인

노력이 함께 담아주어야 될것이다.

 

△현재호선생님의 벽화와 상하이박과 함께 한 문신선생님의 도불전에 함께 했던곳

   외교구락부를 설명하고 있다.

△창원시도시재생과 배선일과장님의 부림시장 창작공예촌조성사업에 대한 설명을 하심.

 5월1일 수요일 오전11시 근로자의 날임에도 불구하고 마산창동 도시재생현장실에

 국토부 정병윤도시실장님과 그외

경상남도계획국장 , 창원시부시장님, 그리고 관계 실국과 총담당직원들..

창원도시재생사업단단장님과 현장연구진들이 2년의 연구적용실행과정을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으며 이어서 재생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과정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를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이와 관련된 여러부서팀, 단체, 기관에서도 지속적인 방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가장 상가지구와 주거지구 재생의 현장의 모든것을 보여주어야하는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5월4일 토요일 서승환국토부장관님도 직접 방문하신다는 일정에

창원시와 이곳 현장팀 모두는 한시도 긴장을 놓칠수가 없는 현실이다.

 

통합창원시의 구도심재생프로젝트 사업이었던 창동예술촌조성과

R&D테스트베드, 상권활성화재단사업의 파트너쉽이 발현되고 있는

현장의 모습들이 과연 얼마나 지역공동체와 주민자력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들의 성과로 더 나은 도시재생의 궁극적 목표인

주민, 상인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것인가를 기대하면서

지금부터

새롭게 다시 도시재생을 위한 체계적 연구계획수립을 해야겠다.

 

부정은 부정을 낳고

긍정은 긍정을 낳듯이,,

그동안의 불신은 털어버리고

결국은 현장의 사람들이 상호신뢰하지 않으면 일은 할수가 없기에

 

 진실로 무엇이 필요하여

어떤일을 해야할 것이며

주민,상인이 원해서

주민,상인이  재미있어하고

사람이 좋아 저절로 일을 할수 있도록

다양한 생각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도시재생의 마스터플랜을 그려야겠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왼쪽 연기나는 공장이 마산방직> 교롱요양소, 창원군 월포국민교, 제일여고, 삼풍발효,

보수식품, 전매지청,00철공소, 방송국, 월영국민교, 상공회의소,마산경찰서, 우체국,

불노식품, 마산극장, 조선운수, 마산역(신마산역) 보건사무소, 조해주조,칠성주조장,소방서,해인대학, 마산여자고등교, 마산여중고,성지여고,천주교회, 마산고등학교, 마산중학교,

완월국민교,창원세무청, 전매청, 법원검찰, 도립병원  남전, 중앙주조,  마산 무학주정, 마산세관,  미곡창고(바닷가 뾰족한 곳), 무학국민교, 몽고장유,대양방직, 환금장유, 시외주차장,

삼일주조장, 대흥주조장00공업,, 의창수산,청과회사, 강남극장, 중앙교회,시민극장,

중앙중학교,성호국민교, 문창교회,흥안공업사ㅡ의신여중, 마포중학교, 북마산역, 회원국민교, 동중학교, 창신농고, 창동택시,상은, 저은,농은, 홍은,(상업은행, 저축은행, 농협은행, 은행인것 같은,,,,)형무소, 태극운수, 고려모직,  구마산역, 상업고등교,합포국민교, 대명모직,

신흥방직, 공업고등학교, 신한모직가공,

1950년 창동의 거리,,,금방, 양복, 다방천국이었다.

황금당은 현재위치 그대로다. 거리에 사람들이 무척많다.

한성다방도 보이고' 양복은 이화' (꽤유명했나보다..)오른쪽 평화당은2009년에 문을접었다. 

▲1950년대 시민극장의 모습... 옆 시민전자는 현재LG25시편의점

신신라사, 세신양복점, 국화라사점, 제일양복점, 형제양복점,  마산극장,  제일극장, 대한노총마산지구 근로조합연합회 , 은하사이다

매일주유소, 세화유리상회, 중앙유리상회, 대성모직주식회사,  태창요리상사,

   마산건축사무소, 일신백화점, 무학운동구점

 

오른쪽 아래 오행당약국간판이 보인다.(창동의 마지막극장 창동공화국 메가라인)

그시절 유명했었던 에스콰이아 구두가게도 보인다.....사람들이 많이오고가는 모습이다.

1900년대일것 같다...(비자비, 명곡사,세탁 . 머피노래방은 아직도 영업중)

  <유장근교수의 마산지역사강의 에서>

                             창동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저녁시간...

▲1960년 학문당 개업당시의 모습

    ▲60년대일것 같다..

조일당. 창동 120-2번지.

예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남녀사이의 애정을 과시하는 최상의 상징물은

아마도 반지가 최고일 것이다.
서로가 만난 기념일을 맞이하여 주고받는 커플링반지, 미래의 삶을 약속하며 주고받는 약혼 반지, 결혼 반지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장신구들의 화려한 디자인에 언제나 연인들은 매료된다.

눈부시게 빛나는 조명아래 올망졸망 꾸며진 보석 진열대 앞에는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창동사거리에서 1974년부터 시작해

 2대 째 귀금속집을 운영하고 있는 조일당. 2011년에 창원city7으로 옮겼다.

옛날엔 창동 조일당 앞으로 버스가 지나 다녔다고 한다.

 특히 가게 앞이 정류장이어서 사람들이 쉽게 오갔던 곳이라고.

▲ 창원으로 사업장을 옮기기 전 조일당 전경

마산 경제활동의 중심을 이루었던 수출자유지역, 한일합섬에는 일하는 여성들이

 무척 많았던지라 주로 구매고객의 중심을 이루어 주었고,

 명절에는 하루에 시계를 267개를 판매하는 기록도 남겼다고 한다.

밀수 보따리 장수로부터 시계를 공급 받기도 하여 세관에도 여러 번 오가며 조사 받으러

다녔던, 웃지 못할 다양한 옛 이야기들을 풀어내 주셨다.

한때 '시계는 조일당, 금은 황금당'이라고 부를 만큼 장사가 정말 잘 됐다고 한다.

 

조사장님 말씀을 들어보니

국산시계가 처음으로 판매된 게 1975년~76년 라미시계였다고 한다.

70년대는 혼수예물 반지로는 '스타 반지'가 최고 인기였으며,

몇 년 후에는 진주 알반지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최고의 예물시계는 30만원을 호가하던 로렉스였다고.

 당시 로렉스는 언감생신 꿈도 못꾸던 서민들은 예물시계로 3~5만원 하던 라도(스위스)를 가장 선호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라도 시계를 해줄 수 없으면 파혼을 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손님이 왕래를 하였는지 접대용으로 다방에서 차를 배달시키곤 했었는데 하루 찻값만 하여도 1만 4,000원이었다고 한다. 한끼 식대가 99원할 때였으니 엄청난 찻값이 들어도 괜찮을 만큼 믿기지 않은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해 가는 소비자의 선택의 요구만큼이나 귀금속들의 변화 또한 다양해져가고 있다. 값싸고 만족스런 디자인들도 끊임없이 쏟아져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으며

현재는 쥬얼리의 각종브랜드가 귀금속시장을 거의 점유하고 있는 현실이다.

 

 

 

 

 

황금당이야기>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귀금속 집 자체가 귀금속 만큼이나 귀한 집이었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기라는 엄혹한 시절과 귀금속이라는 희소성이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불운한 상황 속에서도, 1938년 조선인 (故)박태용씨는 마산의 창동에 귀금속집 '황금당'의 씨앗을 역사 속에 심었다.

▲ 지금의 황금당 전경

그런 창업 당시의 풍경은 앞에서 말한 귀금속점의 희소성을 입증 하듯이,

‘황금당’은 마산 변두리 사람들까지 끌어 모아,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났다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침 개장 전부터 혼수와 패물을 맞추기 위해 모여든 손님들이 주인 기다리기를 예사로 했고, 개장을 하자마자 순식간에 20명 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그 중 반이 양가 친척들로 구성된 이른바 '참관단'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만 하더라도 귀금속을 맞춘다는 것은 정말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 황금당 진열대

그렇게 오랜 기간 확보해온 단골가족들은, 주인이 창업주 (故)박태용씨에서 그의 아들 박춘씨로 바뀐 오늘에 와서도, 마산 창동상권의 원로자리를 지키는 힘이 되어주고 있으며

오늘날,,창동의 명가로 인정되었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후다닥 창동한바퀴~

2018년 창원방문의해. 무거운 책임을 안고 관광문화국 업무 총괄을 맡으신 관광문화국 허선도 국장님이 창원시 관광의 유기적 관계인 도시재생 선도사업현장을 직접 둘러보기 위해 나오셨다. 센터의 사업현황 설명을 공유하시고..

아~~ 옛모습이 이랬구나!

북마산 가구거리를 지나다 보면 시커먼 네모난 돌이 떡하니 설치되어있다. 주변은 가구거리 인지라,,때로는 침대 매트나 짐들로,,, 떄로는 버리는 물건들로,,,,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은 지나다니는 길에서 이기 머신고 전혀 관심도..

사라져가는 엄청난 회원1.2동 재개발 현장

2018.1.14일요일 오후,,, 성호동 철뚝길에서 북마산 철길시장을 향해 걸었다... 곳곳에 가림막이 보인다..ymca유치원도, 주택곳곳이 뻥뚤려있다. 교방천을 중심으로 엄청난 철거가 되고 있었다. 회원동 재개발현장,, 회원..

2018년 첫눈과 함께  오뗑끼데스요~~~~

2018년 1월10일 수요일 오전 9시 카톡이 왔다. P- 갱녀나 눈온다~~ K- 아따 눈온다고 연락주는 남자 니삠미더예~ P- 그래 펑펑온다. 내가 이리 여자가 엄따.ㅋㅋ P- 기뿌다 눈오시네 P- 눈 보나? 이 기적같은 순..

완월동 새뜰마을 어무이들의 행복한 졸업

지난해 12월29일 금요일 완월동주민자치센터 2층에서는 행복한 시간을 나누었다.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주최.운영했던 마을학교 종강식으로 80평생 처음으로 학사모를 착용하여 그동안 수업했던 시간들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참 고..

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이은진 교수님 퇴임강연 - 사회학적 실천연습

마산생활이 시작된 시절, 사소한 생활이야기 기록을 되돌아보면서 퇴임강연을 하신 이은진 교수님, 퇴임 강연을 준비하기위해 지난 시간의 자료들을 하나씩 들추어 챙긴모습 이 역력한 시간이었다. 나도 그날 그시간이 그냥 재미있어서..

창동예서 만난 체홉의 LOVE

크리스마스 이브 24일 일요일 오후 4시, 창동예술소극장 앞에는 줄을 이어있는 풍경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힐껏 거리게 한다. 연극예매를 확인하고 현장에서 티켓팅을 하고 있었다. 빈틈 없는 객석에 놀라웠다. 우와~` 상상..

추억 담긴 황실다방

오래된 부림시장 염색골목길에 아무도 찾지않던 황실다방. 이곳에 20대 청춘(조슬기 외1명)의 재밌는 궁리와 마음이 모아져 추억의 시간이 멈추어 있던 공간에 50년만에 다시 (12월19일) 환하게 불을 밝혔다. 등. 커텐, 장식..

골목 정비
골목 정비 2017.12.15

와 그쪽만 해줍니꺼,,,우리골목도 좀 해주이소~ 어둡고 노후횐 골목 바닥정비 합니다.. 중성동 족발골목, 그리고 만미정 골목 .창원시,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 도시재생 선도사업예산

후다닥 창동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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