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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생활이 시작된 시절, 사소한 생활이야기 기록을 되돌아보면서 퇴임강연을 하신

이은진 교수님,  퇴임 강연을 준비하기위해 지난 시간의 자료들을 하나씩 들추어 챙긴모습

이 역력한 시간이었다.

나도 그날 그시간이 그냥 재미있어서 글을 남겨본다..

이야기마다 사진자료가 있었지만 들리는대로...

 

강연 시작은 당시 서울과 마산을 오가던 교통비 이야기였다.

 

1. 당시 무궁화호는 8,100이었고 특실까지 타면 3,000원이었다.

통일호는 5,900원이었고 특실2,700원 했었다 (아마 추가가격인 듯 하다)

고속버스로는 5시간이 소요되는 데 통일호보다 가격이 쌌더라.

그 당시 강남에서 타는데 5,340원이었다.

그때 마산으로 10분마다 배차가 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마산손님이 많았었던 것 같다.

지금은 30분마다 아님미까. 지금보다 배차간격이 더 많았다.

 

2. 제가,,왜 이 지도를 했냐면,, ,,정확하지는 않다

그 건물이 74년에 세워진 것인데...,

알려드리려고 하는 것은 경남대 앞에 섬이 있었고 그 사이로

앉아계신 이정국씨 부모님이 막걸리 장사를 하셨던 곳이다 막걸리를 많이 먹었다.

기억나는 것은 현재 아파트 2채가 들어선 곳에 한편이

유남 백화점이었다 요 앞에 상가에,,, 유남인테리어가 있었다.

유남이란 것이 마산하고 유남백화점과 관련 있나보다 생각했다

그리고,,대우백화점 옆에서,,, 회를 많이 먹었다

회 먹는데 뒤에서 바다를 보고 소변을 봤다. 바닷가 건물이라서,,,홍콩빠라고 설명을 하겠죠..

굉장히 많은 것을 경험했던 것 같다.

롯데백화점자리는 무슨 회사였다 롯데 백화점 정문 건너편이 바다였다.

 

3. 제가 1990년에 왔는데..

김종덕 교수님은 앞에도 옆에도 창문이 있어서 제일 좋은 자리라고 항상 자랑을 했다.

제가 8월에 왔다. 붙여서 세운 두 건물... 교수들 연구실은 893월에 903월에 입주했다. 입주한 직후에 들어왔다 그때 항상 좋은 방 나쁜 방이 어떻다고 말씀이 많았었다.

복도,,각 연구실 ( 교체된 교수님들의 이름이 나열된 방이 소개되면서~~)

이제는 모두 떠나고 다 바뀌었다. 저도 갈 때가 되었다,

복도 공동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런 시기가 된 것 같다

 

4. 1997년 자료이다

당시 사회학과 교수 명단을 쭉 봤다. 전화번호부가 마산은 0551이었다.

그때부터 마산이 055로 바뀌었다. 여기 보면 임영일 교수만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굉장히 선진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걸로만 봐도 전화번호가 바뀐 시기도 알 수 있었다,

1990년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었다.,,

90년데 들어와서 조교수 대우발령을 받았다..그리고 조교수 대우를 떼기 위해서 당시 임영일

학과장님이 저를 학교에 추천한 글을 보니까.. 이게 나였었나? 생소하다

그때는 제가 당시 학생들의 참여의욕을 높이기 위해 토론식 수업을 했어요

~ 나도 토론식 수업을 한 적이 있었구나 지금은 하지 않아요~

 

5. 첫 번째 월급이다.

수당이 재밌다. 정근수당, 체력단련수당. 가계보조수당. 학비수당. ,,,

체력단련이 뭔가? 저도 잘 모르겠다,,, 받아본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당시 월급이 적었다. 상대적으로 정식교수가 되지 않아서, 세금도 적었다. 5% 안되는...

지금은 소득이 많아서 20% 뗀다.. 적은 월급에서 시작했다...( 가까이 앉은 강인순 교수님이 그거 적은 돈 아니예요~~” 객석에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요즘 이런 명세서가 없어서 한번 뒤져봤다

 

6. 내가 가장 많이 가르친 과목이 사회이론이었다.

첫 번째 중간고사를 어떻게 봤나 했더니,,놀랍게도 학생들에게 20일씩 시간을 주었다..

내가 ,,문제를 내놓고 20일 주고 나중에 답안지를 써서 가져와라 이렇게 했었다.

당시 사회이론은 우리 학교에서 약간의 파문을 일으켰다.

실라버스( syllabus )를 가지고 경상대 학생들이 왜 다른 과 교수님은 그렇게 만드는데

우리과 교수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

.. ,,내가 이렇게 시험을 냈구나,,,

최근에는 2시간짜리 시험을 본다. 90년에는 20일짜리 시험을 봤지만,,,.

물론 지금도 학생들에게 먼저 문제를 알려주기는 하지만,,

사실 사회학의 경우에는 이론 같은게 어려운 점이

이런 게 있다. 정치경제학적 이론, 역사적 이론이. 사회학이론에 포함이 되느냐 안되는냐

지금까지 가르쳤다가 안 가르쳤다가 조금씩 변했던 것 같다. 사회학의 정체성과 관련되는데,,

기본적 역사적 이론이나 정치경제학 이론들이

현실을 설명 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는데 사회적 측면에서는 대접받기가 어려운 상화이었다.

 

7. 학생들과의 기억,,- 한일교류워크샵

(사진을 보면서) 2007년쯤이다

일본초등학생들에게 사회학과 학생들이 한글을 가르쳤던 모습니다.

2004~2010년정도 했는데 단순한 웍샵 발표가 아니라 다양한 곳을 방문을 하였다.

분꾜대학,,동경에서 1~2시간정도 떨어져있는 대학이다

일본과 교류할 때 각자 학생들 집에서 머물게 하는 프로그램을 했다.

대개 일본학생들의 하숙집들이 굉장히 깨끗하다.

일본학생들과 굉장히 친하게 지내서 학생들이 나에게 취직을 했다는 등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5. 회적 활동을 제일 먼저 한 것은 학문의 자유

1990년 당시 기무사가 교수들을 사찰을 하고 있다고 폭로를 한 일이 있었다.

사회학자 명단이 5명 있었다..그때 학문 공동체 내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되겠다 싶어 시작했

. 처음으로 학문의 자유와 사회학자의 윤리 91년이지만 90년부터 팀을 구성해서 논의을 시작했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한국사회학회에서 발표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학문자유에 관한 성명을 학회에서 발표한 것은 현재까지 유일무이하다

사회학자들이 간섭을 많이 받았다. 요즘의 블랙리스트죠... 당시 총무간사였다..

일을 하면서 보니 사회학자들이 도대체 윤리나 학문의 자유에 대하여 굉장히 인식이 낮았다. 회의 질서가 완전히 엉망이었다.

회의간사한테 이런 편지를 보냈었다.

위원회 원활한 운영을 위해 아래의 사항을 간사가 협조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위원회 안건을 명확히 해 달라

안건의 심의를 위해 안견과 관련된 자료를 1주일 전에 송부해줄 것

회의장소를 음식점에서 하지 말고 학교나 사무실에서

회의진행시 알코올 주류를 ,,..

회의진행시 위원회의 사회를 위원장이 보는 것을 다시 한번더 강조해주고 안건 외 발언삼가~

회의시간을 2시간 이내로 제한해줄 것 ..

회의시 마다 술부터 먹자고 해서,~,이래선 안된다,,, 우리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데 음식점에

 가서 대충대충 끝내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편지를 보냈다..

 

6.사회활동에서도 약간 학교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면 경남신문에 <마산시장이 잘못한 점 3가지>글을 썼다.

학교에 시장이 총장에게 공문이 보내왔다.

애매하다. ‘귀 학교에 이은진 교수가 신문에 기고를 했으니,,~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교무 처장님이 공문을 보내주면서 이거 어떻게 처리 해야 되지?

부총장과 면담을 하면서,,

문제를 오히려 제기했다.

 

99년 마창진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7월 시장사퇴운동을 하는데..

시장이 총장에게 너네 학교 이은진교수가 나를 퇴진운동을 하는데 쫌 조치를 해달라고

시의회의장님이 상공회의소 회장님이,, 체육회 관계자 4명이 태권도 복싱 레스링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고 하여 제 연구실에 쇼파를 치웠다..그날,,

서있게 만들려고~ 앉으면 안될 것 같아서,,ㅎㅎ 이 사람들이 시장퇴진운동을 중지해줄 것을 요구했고 학생 동원된 사실마저 들먹였다.,,

총무국장의 간담회가 있었다.

시장에게 이야기 했다.- 당신, 학교에 전화한 이유가 뭐냐

시민으로서 당신에게 이야기 했다..왜 학교에 전화해서 신분의 불안을 주느냐

...총장님이 결국 자제해달라고 했던 일이 있었다.

 

7. 민교협-

총장직선제. 퇴직관련에 대하여 심각하게 민교협회보를 통해서 알렸다.

학내분란을 야기 시키지 마라 . 경고를 2번 먹었다.

8. 최근에 하고 있는 연구는 -권력공백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마산의 경우,,,역사적으로 보면 4번 걸쳐서 파출소가 불에 탔다.

권력과 권력이 이양되는 사이의 빈 공백...

1946 10.6 마산에서 시위 10월 폭동이라고 한다. 시위자 17명 총격으로 사망

아직 연구가 되어있지 않다. 자세한 것을 확인해서 연구를 진행하려고 생각한다.

1979.10.18.

1987.6.26. 제일 심하게 87년 민주화 운동..

어떻게 불탔을까.. 특수한 상황, 그때 사람들의 행동,,,,

9. 오늘 아침 서재를 다 치웠다. 앞으로 뭘 할까..

서울로 이사를 간다. 아들네 아이들이 3명이 되어 손자를 봐줘야 한다 ,,,

나는 좀 더 해야할 일들이 있어 남아 있을 것이다.

 

10. 처음에는~ 방 하나에 살았다

그 다음해는 그냥 학교에서 지냈다. 김종덕교수님 연구년으로 비워져 연구실에서

6개월정도 사용했다.

그때는 재미있던게 학교 정문이 밤 12시에 닫았다. 처음에는 정문을 닫는 줄 몰랐었다.

경비아저씨에게 전화를 하고 들어오곤 했었더. 사람들이 주소도 학교로 옮기라고도 했다.

그 다음해 강인순 교수님이 독일가시고 강교수님의 한우아파트에서도 살았다

그러다가

장군동 kbs방송국 자리,,92년에 처음으로 조합아파트로 이사를 하게되어 그곳에서 계속 살게 되었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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