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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시절 마산의 예인들...

 

▲창동 중성골목의 만초집 조남룡사장님이 고이 간직하고 있는 옛사진...

뒤 배경은 옛, 화장막 (현재 합포고등학교 자리..)

누구의 죽음이었을까...

아마도 마산의 예인의 한명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속 얼굴들을 하나하나 보면,,,,,

 

제일 왼쪽이 동서화랑 송인식관장님의 젊은시절 사진...

훨친한 키에 멋진포즈를 하고 있는 검정양복의 모습은  그이름도 유명한 상하이박.

가운데 눈이 움푹패인 흰머리의 모습이 조두남 선생님... 

 

 

<창동오동동이야기에서 참조- 이상용 연극인>

오동동, 현 코아양과점 자리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까지 지역을 풍미했던

 ‘컨티넨탈 다방’을 운영했던 멋쟁이 신사가 바로  ‘샹하이 박’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샹하이 박은 한때 이름을 날린 ‘주먹’으로서 일제시대 때

상해에서 김구 선생을 도우면서 독립운동에도 일조를 한 경력이 있을 만큼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훤칠한 키에 멋진 카아젤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샹하이 박.

그의 본명은 박치덕이다.

이북출신인 그가 어떤 연유로 마산에 와서 터전을 잡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하지만,

그는 마산의 문화예술 활성화에도 기여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오동동 ‘컨티넨탈 다방’을 운영하기 전인 1950년대 초반에 현 신마산 통술거리의 ‘깡통집’ 건너편 럭키사우나가 있는 건물 1층에서 ‘외교구락부’란 다방을 운영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당시 문신, 김수돈, 김춘수, 강신석, 조두남 등 마산의 예인들과도 교유했으며, 서울에 살던 시인 공초 오상순을 마산으로 초청하여 거의 한달 동안 깍듯이 모셨을 정도로 멋과 낭만을 즐길 줄 알았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신마산 옛 마산극장 건너편 한 모퉁이에서 ‘리틀 클럽’이란 작은 클럽(당시의 술집)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어 ‘외교구락부’를 개업했고, 그곳을 운영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번 그는 드디어 오동동 중심부에 ‘컨티넨탈 다방’을 낸다.

멋쟁이에다 의리의 주먹쟁이가 운영했으니 ‘컨티넨탈 다방’이 어찌 유명해지지 않겠는가.

창동예술촌골목에 그려져 있는  외교구락부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