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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모꼬지

5월 마지막 일요일..

토요일 창동거리에 온통 쏟아졌던 행사들로 지칠 법도 하나

이른 아침부터 주먹밥과 샐러드를 만들어 가덕도를 출발했다.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이다.

5월부터 새롭게 맞이한 남편의 주5일제 근무로  결혼28년이후 함께 노는 연습이 시작되었다.

 

평소 걷는 사람들. 시와자작나무, 기타 프랜즈로 인연맺은

미천마을 송 시인네와 수한씨네랑 나들이하게 된 것이다. 실은

송시인의 가덕도 섬 이야기와 100년 된 가덕도 등대 소개 글을 취재하기 위해

나서는 길에 길동무로 보태본 것이지만

마침,,송시인의 11번째 결혼기념이라고 하여 이런저런 연유로 맛난 해물정식도

예약해두었다고 하니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게되었다.

 

진해를 지나. 용원..진해경제자유구역을 지나 가덕도에 들어섰다.

요즈음 여는 섬을 찾는 이들을 보면 대부분 낚시꾼..등산객이 눈에 띄게 많이 보였다...

그리고 경사가 높은 산길을 오르고 다시 굽이굽이  내려가니...

부산 강서구 천가동가덕도 외항포에 도착 .

 

 

방파제에는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 장어를 잡아올려 손질을 하고 있는 모습..

 

   마을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마을전체가 일본 시골마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와~~마치 일본 같아요..

송시인은 웃으며 100년전 일본마을의 모습 그대롭니더.

 일본의 마지막 남은 징용 조선인촌 우토로 마을과 흡사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곳 마을은 원래 일본 군대 막사였다고 합니다. 

 

 △▽이 집은 은 당시 무기창고로 쓰이던 건물이었으며 기름먹힌 나무로 집을 올린 목조건물로

  목조벽 외부에 함석을 덧대고 지붕은 일본식 기와를 올려져 있었습니다.

 다른 집보다 규모가 좀 큰 듯...4가구정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나 비를 막기 위해 설치한 창문 위 눈썹지붕도 일본 고유의 건축양식이라고 함

 

마을을 한바퀴 둘러 볼까요..

 

 

 

왼쪽지붕색이 다른것은 한건물에 2가구가 살고 있다는 뜻이예요.. 번지표지판도 각각 있더라구요.

▽오랜세월에도 이웃집과 연결된 작은 동네길, 집앞 하천, 그리고 마당한켠텃밭과  꽃을 이뿌게 키우고 있는 풍경이 참 정겹게 보였습니다.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헌병대 막사. 무기창고 장교사택, 사명내무반등을

현재까지 조금씩 수리해 사용하고 있으며 요새 사령부 건물 형태 그대로 고수하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아직 국유지로 묶여있어 건물을 함부로 재보수 ,수리할수 없어

외벽은 그대로 이용하고 지붕만 새로 기와를 바꾼집이 몇 있었습니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니 군데 군데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당시의 100년된 우물터가 3~4개 보였습니다.

어떤 곳은 지붕구조물 까지 붉은 벽돌로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민들레를 다듬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할머니..여기서 오래 사셨어요?   고개를 끄덕끄덕... 가덕도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송시인이 아주 반가워 하네예..

누구누구 아시냐고 물으니...기억에 남아있었는지  누구네...그러신다.

몇살이에요? 하고 물었더니, 옆에서 함께 있는 며느리가

1살 모자란 100세라고 한다... 우와..

손짓을 하며 저기는 딸네집... 저기는 며느리집...마을에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더...건강하세요

 

일본군 포대 사령부 비석과  언덕 콘크리트 포진지,,탄약고 일제시대 사령부터와 화약고, ..

포진지 위언덕은 외부에서 쉽게 보이지 않도록 설계, 구축되었으며 육로는 물론 바다 어느곳에서 라도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게 토성으로 쌓아 마치 마을뒤 조그마한 언덕쯤으로 보이며 진지앞 마을 곳곳에는 팽나무,

갈대와 대나무을 위장되어있으며 벽 아래에는 요철의 홈을 파 포격소리를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게 하였으며. 외벽 또한 흙으로 쌓아 소리와 진동이 새나가지 않도록 되어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