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강효정.1941년생 .75세..

어린시절 호주 선교사와의 만남이 인생의

큰 버팀목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중앙가구프라자 아래 이조가구를 평생 이어가고 있다.

최근 아들이 함께 하고 있다.

난 어머이 하고 부른다.

어머이 어린시절 이야기를 목욕탕에서 듣기 시작하면서

시간날때 마다 옛이야기를 물어보고 자주 듣곤한다.

" 아이고 경년아..내가 이럴줄 알았으면 더 잘 기억해놓을걸 ~ "하신다

어린시절 몇 이야기는 이랬다.창동남성동 파출소 근처에서 살았는데

주변에 돌이 많았다고 한다.

1) 경남차부이야기,,,

버스정류장이었다. 버스문이 나무문이였다. 

어느날  불이나서 다 타고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2) 해거름 골목에 돌담이 쭉 있었다. 큰 여관도 있었다고 한다..

3) 조창 뒤 골목을 쭉 나가면 부림시장과 만나는 곳을 가물치골목이라고 불렀다..

4) 현재 남성치안센터 아래 북경성 주변은 중국집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인이 경영하는 곳이 많았는데..  장사가 잘되냐고 물으면

"장사~ 아니데요(안되요)..순경이노~ 외상먹고 ~학생들은 깽판놓고~~..

그렇게 대답한다고 했다. .어릴때 들은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게 신기했다.

5) 부림동106번지 모자원.  부림동 도둑놈 골목이라고 부르는 곳.

그 곳은 6·25전쟁 직후 유가족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의 모자원건물이 1974년까지

20년간이나 존재했다고 한다.

16살쯤. 친척의 소개로 미망인들에게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해서

엄마와 오빠 그리고 나. 동생 이렇게 4명이 모자원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똑똑한 탓으로 그곳에서 총무역할을 맡으면서 잡무 및

식량 배급 주는 일을 하면서 신치일씨 밑에서 숱한 말못할 일들을 많이 했다고

한다..

1956년도 스물 한살 쯤 어느 날 호주선교사 존 브라운이 찾아왔다.

자수를 놓을 수 있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는데 모두가 자신 없어 고개를 저었는데

 내가 해보겠다고 손을 들었지.~샘플을 갖다 주고는 맡겼는데

그때부터 동그란 수틀에 고정하여 낮밤을 가리지 않고 수작업을 하여

하나씩 완성해서 가져가면 "미스강..오케이~" 하였다.

그곳은 제비산(노산동)이였는데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마 호주 선교사의 사

택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윽한 향이 코를 자극하였다.난로 위 주전자 물이 끓고 있

.물음에 (한잔 하겠느냐) 대충 무슨 뜻인줄 알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내 생애 첫 커피 맛을 보았던 기억이다..아이고 그거 한잔 마셨다고 집으로 오는 길에

취해서?? 한참을 쉬다가 갔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청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3만환이었는데 한달 꼬박 납품하면 9만환을 받았으니

돈도 엄청 많이 벌었었지..오빠. 동생들 뒷바라지는 내가 다 책임졌다 아이가..~

그리고 1년중 한 달은 유급휴가였다. 요즈음 같으면 생각도 못할일이지..

한달치 월급을 고스란히 그냥줬지. 그 돈으로 친구들과 놀러도 다니고 했다.

내 결혼식에도 왔었다.ㅎ그당시 외국인이 우인으로 왔다는 사실도 굉장했지

대광예식장에서 결혼했다..

그리고 브라운이 호주로 들어 갈떄 나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했는데

사촌동생이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서 그 이후 소식이 끊어졌다.. 살아있을까.? 

그 아들도 생각난다고 한다. 이름이 마이클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 어무이는

고인이 된 강주성(315기념사업회) 회장님의 여동생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존 브라운 호주 선교사,,,,

<노마와 이명자는 또한 마산에서 경제적으로 불우한 여자들과 소녀들의 자급을 위해

중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들은 식탁보에 장식하는 기술을 배웠고,

상품은 시드니, 멜번, 브리즈번, 애들레이드에서 PWMU를 통해 판매되었고 그 일꾼들에게

그 대가가 지급되었다....>

 

 

그리고 2009년. 경남 선교 120주년을 기념 준공식에 참석한 소식도 알게 되었다.

우와~~내일 목욕탕에 가서 꼭 이야기 해드려야지

브라운이 어쩌면 아직 살아있을 것 같다고..8년전에 왔다갔으니까...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황금돼지의 복기운 가득한 돝섬으로 오세요

점심시간 ~돝섬 오용환대표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kbs 생생정보 촬영에 돝섬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갑작스레 연락받은 지인들이 약속된 시간에 선착장으로 도착하였다. 몇년만에 가본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히어로..

111년 시간이 담긴 터. 창동 시민극장

1908년 마산 민의소 경남 최초 근대적 시민운동의 산실 1920년 마산구락부 회관 창립 (마산지역 문화운동의 구심점) ( 1921년 마산학원 1925년 독서회 창립총회 1927년 신간회 마산지회 설립대회 개최) 1935년 공..

창동예술촌 골목에서 만난 어린왕자 이야기

교방초등 4학년 남학생이 도시재생지원센터로 들어와서 나무판이 어디 부착되어있는지 물어본다. " 어떻게 이곳에 와서 물어볼줄 알았니? 하고 물어보니 지난번에 여기 왔었다면서 창동아지매를 한번에 알고 물어본 것이었다. " 가자~~..

40년을 창동과 함께 한 슈산보이

바람이 차거운 월요일 아침,, 남성동 우체국 다녀오는 길에 옛 남성동파출소 벽면 구두수선 아저씨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대통령하고 걸어보이 기분 어떻던고예 ? ㅎㅎ아직도 보는 이마다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춥다고 좁은 공간으로 ..

먹자골목 진주집

부림시장과 함께 한 38년. 고향이 진주라고 한다., 진주집. 365일 내내 열무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곳. 10년전에 처음 먹었을때 3.500원이었던 열무된장밥. 오랜만에 갔더니 5,500원이다. 그래도 좋다.. 늘 한곁같은 ..

크리스마스날 학문당 풍경

창동아지매 창동살이 11년만에 처음보는 따뜻한 풍경입니다. 64년동안 묵묵히 지키고 있는 곳 학문당. 모두의 기억속에 추억 한자락 있는 장소.. 10여년전,, 모두 떠나고 늘 휑한 서점이었는데 오늘따라 끊이지않고 사람들의 발길..

내 생애 최고의 시간

끊임 없는 축하의 댓글, 문자, 사진에 아직도 정신줄을 놓은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만난 취재노트에 다시 또 뭉클함이 다가왔습니다. 이미지 기자님^^ 저의 긴 시간을 기억해주시고 영광된 시간을 다시한번 더 기..

소소한 송년회
소소한 송년회 2018.12.11

12월이면 송년회 모임이 많죠...,, 한해를 보내면서 서로의 행복한 기운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의미는 또 다시 함께 바라보는 삶의 가치를 위해 학습하고 웃음수다가 스스로를 건강하게 하는 에너지를 쌓아가는 힘이랍니다. 창동희..

중성동 세공사골목

점심먹고 골목한바퀴 생각에 사무실을 나섰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는 세공사 점포가 몇군데 있을까 하는 궁금함에.. 창동주차장 뒤 골목을 들어서자 벽면그림이 익숙하다... 창동예술촌 정순옥 작가의 마음이 담긴 벽... 저..

창동예술촌 골목에서 웃음 끊이지 않은 시간

너무 좋았다고 재밌게 잘 놀았다고 고맙다고 감사의 문자가 온 창신대학교 한국어교육과 학과장외 중국. 배트남 학생들,, 학교 밖을 나와 창동예술촌 골목에서 웃음 끊이지 않은 추억 시간을 나누었다.

황금돼지의 복기운 가득한 돝섬으로 오세요
황금돼지의 복기운 가득한 돝섬으로 오세요
황금돼지의 복기운 가득한 돝섬으로 오세요
황금돼지의 복기운 가득한 돝섬으로 오세요
황금돼지의 복기운 가득한 돝섬으로 오세요
황금돼지의 복기운 가득한 돝섬으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