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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스토리벽화 포토존 즐겨보세요

 

 

마산,,,창동은 다방천국이었습니다.

.7080 올드팝은 붉은 백열등아래 청춘남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고 청바지와 통기타...

 LP판의 DJ전성시대,,,

문신 선생님의 고기잡이, 유채(1943)

(

▽게할아버지 최운( 1921년 마산 오동동에서 출생)

▽마산의 대표축제  가고파국화축제를 이야기하는 국화 날개

▽진해콩을 만든 사람 박영도(1912-1969) 사장

마산의 부호 옥기환(초대 마산시장)이 자신의 소유지인 남성동 113번지 일대의 집과 땅을 어머니 부양하며 

먹고 살라며 선뜻 내준 것이 시작됨.

 마산토박이인 박영도가 남성동 113번지(현 대신증권 자리)에 독자적으로 ‘대한제과’라는 간판을 걸고 진해콩을 만들기 시작한 게 1930년, 그의 나이 18세 때다. 대한제과는 후에 ‘진해콩상회’로 이름을 바꿔 마산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진해콩을 계속 만들었다. 박영도가 진해콩 과자의 원산지로 남성동 그 자리에 터를 잡게 된 연유가 있다.전국적으로 소문난 구경꺼리로 마산 인근 진해의 ‘봄 벚꽃 놀이’가 있었다. 당시 진해 벚꽃 구경을 가려고 경남차부(현 경남은행 창동지점)와 ‘천신호 뱃머리(남성동 선착장)’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이를 본 박영도는 마케팅 전략을 그쪽에 맞춘다. 그러려면 땅콩 이름을 마산콩보다는 진해콩으로 하자. 그렇게 해서 진해콩으로 했고, 이게 주효해 진해로 가는 누구나 진해콩에 맛들이게 되면서 엄청나게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진해-마산을 왕래하는 천신호 배안이나 경남차부에서 오가는 버스 안에서 누구나 간식거리로 값싸고 맛있는 진해콩 한 두봉지 사들고 가는 것이 ‘공식’처럼 됐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펌)

▽술의 도시, 꽃의 도시 1930년 엽서

‘술과 꽃의 도시’ 마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자료로 1937년 마산부가 만든 관광홍보용 리플렛 「관광 마산」의 표지였다.

마산을 둘러싸고 있는 무학산과 마산앞바다, 그 가운데 두둥실 떠있는 돝섬, 신마산일대

만개한 벚꽃(제일여고 아래 연애다리,,,)풍경..바로 그 옆에 술의도시를 대표했던

마산의 명주(銘酒)를 이야기 한다는 설명을 듣자 마자... 윤형근회장님의 붓은 한순간에

쉼없이 쓱쓱쓱~~~~~~~두산중공업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마산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 복어와 아구...

낡은 벽면이 도심을 웃게한 벽화작업은 4월19일 두산인 나눔의 날 행사로 진행되었다,두산중공업CSR팀(이빈팀장. 이승용부장. 전영빈과장)이 적극 추진하여 원도심의 새로운 시민공간, 오동동광장의 활성화와를 위해 창동예술촌 정순옥작가. 박남순작가. 윤형근마산예총회장님,,,그리고 박상근작가와 함께 하는 작업팀이 시작과 마무리를 잘해주어 최고의 명작이 되었다.. 지역시민들은 물론이고 방문객에게 마산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큰 의미가 될 것이다.. 감사한 시간이다.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다.. 마산을 이야기 할것이다..

          ▽ 아구와 대구가 웃는다..마산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