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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이야기..


조창 있었던 창동, 마산 도시화 시작

경남도민일보 2009-11-23 09:38

지난 21일 오후 이승기 관장이 백남다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제공
도시탐방대 세 번째 일정은 마산의 역사를 드러내 주는 마산 조창과 유정당 건물, 어시장과 부림시장에 대한 설명, 그리고 만담 꾼 마산영화자료관 이승기 관장이 들려주는 마산 극장사가 버무려지면서 재미를 더했다.

◇1893년 마산에 조선서 가장 큰 기선이 입항했다? = 탐방대는 21일 오후 1시 30분 마산 창동사거리 근처에 있는 농협중앙회 365 코너에 집결했다. 곧장 마산 창동예술소극장으로 나아갔다. 심술궂은 날씨 탓에 마산 조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소극장에 앉아서 들었다.

마산 조창과 유정당에 대해 유장근 대장은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일전에 유 대장은 본보 김주완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마산에 있었던 조선시대 조창과 유정당(8개 동, 53칸) 건물, 그리고 옛 항구를 복원하면 진주 남강과 촉석루만큼 명물이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조창은 국가운영에 필요한 조량을 모아 둔 창고이다. 이러한 조량을 바닷길이나 육로를 통해 수도로 실어 나르는 제도가 조운제도다. 마산 조창은 창원, 함안, 칠원, 진해(진동 일대), 거제, 웅천, 의령, 고성 등 8개 읍의 조량을 담당했다. 아무튼, 그런 조창이 마산 시내 한복판(현재 제일은행 자리)에 있었다.

유 대장은 "1893년 마산포 조량 수송에 투입된 현익호를 얼마 전에 찾았다"며 "현익호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기선 중 가장 규모가 큰 444t급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 대장은 조창과 창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1899년 개항보다 앞서는 제1차 개항(1760년 마산창 설치됨)의 의미가 있고, 남해안 최대 무역항으로 성장한 거점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마산 도시화의 시작, 현대 마산의 기원이다. 마산 역사에서 초기 근대(Early Modern period)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년 이상 된 골목길은 마산에만 있다" = 허정도 건축가(전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는 어시장 골목과 창동 일대 골목을 걸으면서 "대한민국 어디를 살펴봐라. 몇백 년 된 골목길이 있는지, 마산의 골목길은 보물이 아니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며 "마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골목은 역사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변천사를 잘 알아야 이후에 제대로 된 도시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1일 오후 이승기 관장이 백남다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제공 ◇마산 백남다방서 한국 영화사에서 2번째로 긴 영화제목 나왔다 = 이날 오후 4시쯤 합류한 이승기 관장은 창동의 골목과 다방의 역사를 소개했다. 1950년대에 있었던 백남다방(현재 마산 창동 고려당 부근 골목)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이 관장은 "당시 밀수가 성행했는데, 백남다방에서 대구 마피아와 마산 마피아의 대결이 있었는데, 한 마산 깡패가 대구 마피아를 살해했다. 그는 무기징역을 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는데, 한 여인이 계속 그를 면회와 교도소에서 옥중결혼을 했다"며 "이러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김영효 감독이 1974년 신성일, 우연정을 주연으로 내세운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고 마음속 가득히 사랑은 영원히>를 만들었다. 무려 24자다. 2000년 남기웅 감독의 디지털 영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7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가장 긴 제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탐방대는 시민극장과 강남극장이 있던 자리에서 이 관장으로부터 마산 극장사를 추가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