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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 사람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2.12.15 창동예술촌은 창동의새로운 희망이다
  2. 2009.02.13 창동 상인회원들의 일탈 (1)
  3. 2008.10.06 바우는 오늘도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4. 2008.10.06 덕이 아지매




금요일아침,,,배달된 도민일보 1면아래에서 익숙한단어가보인다.

 창동,,어,,뭐지?,,,위기의 창동예술촌이라는 글제목,, 가슴이멈추었다,,

,,,이런저런 속내를앓고는 있었지만 ,,,,,사람들은 참 쉬이 말한다 .

창동예술촌이 어쩌고저쩌고,,뭐볼끼있나~~가보면문이닫혀있고,,이래서 무슨 예술촌이고? 

이래가지고 창동살리겠나?  사람들이 빗발치게 쏟아내던 말들이 스쳐간다.

100일후 다시 머뭄, 한적함, 운영자의 부재, 불성실함에 미치겠었는데...

다시 입주작가전시회를 불씨모아 " 따뜻한겨울축제 "준비로  작가들이 모여 의논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고...이런... 어째야 되는건지...

창동예술촌이 생긴 사업의 정의을 진정 아는가?  되묻고싶다 .

그리고 창동예술촌,,이제7개월이 되었다 세상에 그 이름받고 태어난지 ,

제대로 출생신고도 아니된채..이름만 안고 울음을 터뜨렸건만...,

 지난날  창동 뒷골목의 모습을 잊었단말인가  진정~~

썪고 흉물처럼 버려져있던 모습,, 너덜너덜한 모습,, 오랫동안 쌓여져 있던 옛시설물들..

전기도, 수도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데 참으로 힘이들었다..

비가새서 포기하고 돌아간 작가도 있었다.~  시로부터 임대료를 지원받는다고 하지만..

막상 주어진 공간을( 배보다 배꼽이 큰) 개인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이런 모습을 볼수가 없었다.

 1년도 지켜보지못해서 걸음마도 떼지못한 아이에게 위기라니,,

말많고 말많은 이 지역에서 얼마나 잘되나 보자고 벼러든 사람들은 비웃음을 짓겠지,,

,이게 아닌대 정말이게 아닌데~   너무도 미약했었다 .

철저한 준비도 되지않았었다.  작은소망이 이루어졌다고 하면

어두웠던  골목이밝아지고 색깔이입혀지고 사람이야기가 들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내용을 담아가리다 생각하고  창원시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가고있는

 과정이건만,,,,

이번 문제는 그동안 불신에 쌓여던 원흉..
사람이다.  결국 사람이었다~  어떤사람이 동네를 신명나게할것인가 ~

어떤 사람이 모이고살아가는 것인가~
어떤사람이 행동하는냐에 달려있는것이었다

구조적 운영체제 방법의 미약함으로 오늘 이런 모습으로 보여지게 된 것이다.

창동예술촌,,구도심의 문화예술재생 접목으로 많은곳애서 이곳을 배우기위해 방문한다
창원시의 구도심재생에 모두 칭찬을 아끼지않는다

어느 곳이든 갈등과 반목이 따른다
하지만 비난만이 능사가 아니다
부족함과 실수를 경험으로 지혜와성장을 배워간다

창동예술촌,, 난
너무도 사랑하고있다 .

입주작가들도 시민들도 창동상인들도 사랑으로 바라보아주길바란다
사랑하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창동예술촌에게 바라는 어느 님의 바램을 그대로 여기에 옮겨본다.

 12월17일 월요일 신문에서 다시 밝힘)


음... 저는 이제껏 창동예술촌이 시 결정에 입주 예술인들이 따라오는 하방식 의사 결정구조였다고 생각합니다.

창원시는 예술인들은 시가 지원하는 예산이 없으면 자기활동만 할 뿐 창동예술촌을 알리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예술인들을 불신했고,

실제 예술인들은 시가 예산을 지원하면 마지못해 행사에 참여하는 등 대체로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왔다고 생각합니다.

 상인회는 상인회대로 도시재생을 위한 상권 살리기가 목적인만큼 예술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했구요. 이런 구조가 모여 상명하달식 지원이 이뤄진 것을 판단합니다.

저는 이를 상향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예술인들이 주체적으로 아이템과 프로그램을 짜고 이를 바탕으로 시에 "우리가 이러한 프로그램을 하려 하니 검토 후 예산을 편성해 달라"고 나서야 합니다. 이는 예술인 개인이 아니라, 예술인 두 세 명이 그룹을 만들어 컨소시엄 형태로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혹시 모를 특혜 논란과 잡음을 막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심사가 필요한데 이는 시와 예술촌 외 전문가 그룹(가능한 창원 시외 인사), 상인회가 참여한 공동
의사결정기구여야 한다고 봅니다.

상인회는 여기서 이 아이템이 상권활성화와 많은 사람 혹은 사람 창동 유치에 적합한가를 우선 따지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아이템이나 프로젝트가 뽑히면,

 지원은 하되 간섭은 절대 배제 한 후 나중에 엄정한 심사로 성과를 보고 추후

인센티브 또는 불이익 주도록 합니다. 이러기 위해선 입주 정관을 고쳐 예술촌에 있는 한

 최소 두 번의 기획 프로젝트를 하도록 한다는 규정을 넣는 것이 예술인 간 경쟁과 참여 유도에 좋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매달 한 차례 이상 창동 역사 투어를 열어 꼭 예술촌을 보러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투어 안에 현재의 창동으로 예술촌을 부각시키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델은 진주 '골목길아트페스티벌'입니다.

 예술인들의 자발적 축제 구성, 약간의 지원, 지원 후 간섭 배제, 그리고 지역 시민단체외 협력하는 거버넌스 구축, 수평적
의사결정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잘만 벤치마킹하면 창동은 항시적 축제 도시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이하 생략>

여러가지 안타까움이 많은 곳이지만..

겨울이 지나면 다시 활짝핀 창동예술촌의  봄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잘 되어야 할 것이며.. 분명 잘 해내리라 생각한다.

오직,,창동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컨텐츠가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할 것이다.. 분명.....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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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중앙상가 실개천을 따라서......


1. 견학 가기까지..


09년의 마음다짐은 여러 가지로 혼미했다.

공동마케팅사업과  상인회원과 함께 해야 할 여러 가지

교육 및 이벤트......

그리고 시설현대화사업의 진행을 위한 준비의

 고민 속에서 언제나 여러 목소리와 함께 기획을 나누지만

분분해져가는 그러면서 똑 부러지게  설정의 실마리는 없는 결론...

마음만 늘 욕심이 따르고 세심한 접근과 방법은 미약하기만 하다.

반복되는 고민과 어려움을 안고 하루하루 일을 하고 있지만

지난 2년동안 지속적으로 해 왔던 이벤트, 공연들은

아직은 이웃집 건너 불구경 하듯

상인회가 전달하는 여러 가지 사업, 방향들이

 상인회원들에게 공감을 주기에 미흡하였기만 하다고들 한다.


그렇게 잘 나가던 마산의 대표적인 창동상점가에

상인회라는 단어 역시 아직도 낯설기만 한 현실..

젊은 업주들은 더욱이 그러하니

함께 만들어가는 여러 일들에 걸림돌 투성이다.


1월은 예전 같은 설 명절 특수효과의 기대는

이미 사라져갔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으로 몸과 마음이 바빴고

2월의 잠시 느슨함을 빌어 회원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전하고 싶어 견학을 준비하였다.

센타. 지자체에 지원요청을 해 보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하여 제1회 상인대학을 마치고 거두었던 회비로

차량비를 충당하고 나머지 먹거리는 상인회에서 부담하여

떠나기로 하였다.

창동상가와 비슷한 공동화 되어 도심상권의 환경을 가졌던

포항중앙상가. 죽도시장을 결정하고

 실개천이 흐르는 거리로 탈바꿈하여 백화점보다 경쟁력있는 상가로 유명세를 달리하고 있다고 하니 과히 부러움만....


담당시의원. 지역경제과 담당 그리고

올해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 줄 상인대학 담당 SB유통연구소장님에게

함께 아파하는 마음과 대안을 느끼자고 동행을 권유하였더니

흔쾌히 받아 들여 주었다.


역시나 참여도는 2지역회원(부림 전통시장과 맞물려있는 곳)들의 단합력은 최고!

1지역 회원들( 화장품, 휴대폰, 의류, 신발, 미장원, 귀금속, 안경, 제과)은 개별 점포의 형편과 변명에 스스로 발목 붙잡혀 떠날 줄을 모르고, 상인회 일에 적극적인 관심사도 없고

3지역회원들은 주점과 음식점,,,그리고 떠내기(쉽게 개. 폐업) 보세옷가게들의 여러 색깔의 구성으로  공동체의 공감력에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렇게 2대의 차량에 56명의 회원들과 함께 마산을 떠났다.


2. 경주 도착

 오전 9시 20분에 출발-> 11시 조금 지나 경주 도착

유일하게 매표소에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국립박물관에 들어가 신라시대의 다양한 유적물을 감상하였다.
 금관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던 어느 회원은

진짜 금인가 하고 질문을 하였더니 순금이라고 하자
“ 금값 비싼데 요즘처럼 어려울 때
돈 되겠다고“ 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3. 점심

 방앗간에서 쪘다는 따끈하고 쫀득한 밥맛,

땡고추를 송송 넣어 얼큰한 듯 시원한 시래기 된장국,

오징어와 미나리를 즉석에서 쓱쓱 비벼 새콤달콤한 무침에 절로 군침.

그리고 언제나 먹 거리 감초 같은 삼겹 수육과 잘 익은 김장김치,,그리고 소주 한잔....

따뜻한 겨울 햇살아래 맛난 점심을 먹게 되었다.


4. 포항으로


사전에 연락하여 안내를 맡기로 하였던 포항중앙상가 노용빈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제쯤 도착하느냐고...

지금부터 40여분 뒤에 도착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버스는 포항으로 점점 가까이 달려갔다.

포항 역 앞에서 버스를 세우고 회원들이 내렸다.

시장 활성화 우수 사례집에 보여 진, 장황하게 말로만 들었던 실개천이 한 눈에 들어왔다.


평일 한 낮인데도 창동상가에 비하여 유동인구가 눈에 확연할 만큼 많았다.

포항시민들의 새로운 휴식처, 쇼핑의 공간으로 탈바꿈되어

쾌적하고 아름다운 거리. 찾아오는 거리로 당당히 펼쳐져 있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였다.

골목 안에 빼곡히 형성된 다양한 보세 옷, 아동의류가게들도 눈길을 끌고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였다.


5. 죽도시장 


 지금 한창 시설현대화 사업을 활발히 하여 고객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늘어 마산의 경쟁력 어시장과 같은 곳이라 친숙한 환경이었다.

전통시장 투어로 관광형 장보기 프로그램으로도 연계되었다고 한다.


6. 중앙상가 상인회 방문


  몇 임원진들은 중앙상가 상인회를 방문하여

중앙상가의 재탄생에 이르기까지의 이석형 사무국장으로부터 여러 가지 사업안들을 설명 들었다. 
혀를 내 두를 정도로 상가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였다.

우리를 안내한 노 총무 역시 혜성처럼 나타나 상가 일을 도맡아 뛰어다닌다고 한다.

유급 실무자 하나 없이 내부 경비를 알뜰히 하면서 젊은 상인 스스로 협조와 배려, 발 빠른 사고와 아낌없는 열정으로 잘 꾸려져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실개천의 물 흐름도 동절기에는 가동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특별히 마산에서 견학을 온다고 하여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여 준 아낌없는 모습에 감동을 하였다.


 

7. 물회

포항의 명물 먹 거리로 손꼽히는 것 중의 하나가 물회라고 한다.

노 총무의 안내로1인당 12,000원 가격을 단체 값으로 낮추어

10,000원에 하기로 하고 새콤달콤한 빨간 육수에 맛나게

비벼서 먹고 서비스로 국수사리, 밥, 매운탕까지

배부름의 만족, 풍요로운 맛의 행복함에

모든 이들이 행복해 하였다.
횟집의 아름다운 여사장님의 배려. 노총무의 알콩 달콩한
배려로
마산을 떠난 포항으로의 하루 일정은

저녁 해거름에 모두 마치면서

오후6시 

포항제철이 눈앞에 바라보이는 바다를 뒤로하고

마산으로 향했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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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몽상가 2009.02.16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동, 오동동의 좁은 도로와 비탈진 경사로 인해 애초에 중심가로서의 한계가 있는 동네입니다. 지난날의 영화는 잊고 유럽식 거리형
    명품아웃렛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시선 앞에
한 걸음 한 걸음  바닥을 끌듯이가는 이가 있다.

바우다.
어~~어~
앞으로 넘어졌다.
뛰어가 일으켜 주렸더니 제 스스로 일어났다.

바우는 언제봐도
강하다. 제 멋대로다.
언제나 혼자다.

‘아직도 죽지 않았네~ 할 정도로
오랜 기억속의 사람이다.
바우,,,,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관심사에 걸려든 바우...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해본다.

1970년대
아주 어린 시절, 정말 가난한 시절,,
집에 있던 작은 물건들 (양푼이, 손잡이 떨어진 냄비,떨어진 책등)로
깡냉이 한 그릇 바꾸어 먹던 시절,,,
바우는 그 시절 넝마주이로 기억된다..

등 뒤에 얼기설기 엮인 짚으로 된
커다랗고 깊은 항아리 모양의 넝마를 지고
온 종일 동네를 쏘다니며
이 것 저 것을 주워 담아 모인 것들을 가지고
뭔가를 먹고 사는 것으로 해결하며 살아 왔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모습은
요즘 노인들이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휴지를 줍는 모습과
별 다를 건 없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한 동안
난 추산동을 떠났고
바우를 잊고 살았었는데
다시 이 곳 추산동으로 이사 온 후
아주 가끔 눈에 띄었다.
아직 추산동에 살고 있는가 보다..

바우는
추산동, 어시장, 부림시장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친숙한 캐릭터다.
어시장을 한 번 나오게 되면
이 곳 저 곳을 돌다가 팔고 있는 생선 한 마리 후딱 집어
도망가듯 한다.

그 때 생선 팔던 할머니는
“ 야이 바우야~ 이리 안 갖고 오나...저 놈 잡아라~~~“

분명 훔쳐서 도망가는 바우에게 도로 뺏아 오지 않을 줄아는 당신이면서 호되게 고함을 치고는 옆에 나란히 앉은

아낙들과 바우에 대한 농담을 주고 받는다.
이런 일을 당하게 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호통질하는 척만 한다.

언제나 바닥을 질질 끌면서 걷기 때문에 절대 뜀박질하듯 뛰지를 못하는 것도 알고 있다.

어느 날은
어디를 가는 건지,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알고 그러는 건지
막 출발하려는 버스도
고래고래 태워 달라며 오르는 문을 붙잡으면서 억지 부리며
타고 가는 모습도 본 적 있다.

또 어느 날은
신호등앞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며 천원을 달라고 졸라댄다.

사람들은 바우에게 “ 바우야 ~ 니 이돈 갖고 뭐할낀데
놀려대듯, 동생한테 뭐라고 다그치 듯 하면서
밉지 않은 듯 ‘ 아나~~(여기있다) 하고 손에 쥐어 준다.

바우는
분명 나이가 꽤 들었을것 같은데(내 나이가 마흔 여섯인데
아마도 60줄은 족히 되었을 법 하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검은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는 하얗다.
짧은 스포츠머리다.
체구는 아주 작다. 허리는 굽다.
언제나 옷의 행색은 남루하다.
가족은 있는걸까?

누구랑 살고 있는지,
지금은 집이 어딘지....
요즘 아이들같이
좋은 것 , 깨끗한 것, 맛있는 것만 먹이려는 모습에 비하며
바우는 아무거나 먹고 살았는데도 건강해 보인다.

추산동 철뚝 위
성호동 가는 길에
작은 쪽 마루가 있었던, 나지막한 바우집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가끔 눈 앞에 보이는 바우를 보면
오래된 정원 한 켠
숨겨져 있는
삶의 진실 된 한 모습이다.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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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54번지


나의 초등시절,
마산에서  유명했던 부림시장 옛 회센타
지하 들어가는 입구에 45년동안 줄곧

한 자리에서 변함없이 앉아서

생선을 팔고 계시는 덕이 아지매..


부림시장과 창동상가의 상인들 중심으로

그 날 그 날 생선반찬거리를 책임져 왔을 정도로

해가 지면 한사람씩 찾아와


"아지매 ~ 오늘은 뭐가 싱싱하고 좋슴미꺼~~
"


제사, 명절을 앞두면 주문 생선으로 늘 분주하다.

구찌들(단골)에게는 알아서 척척 다듬어 주기에

오랫동안 아지매를 찾는 손님들은

아마 한 식구처럼 지내기도 한다.

평소

딱 두어 세 가지 종류만 펴 놓고

다듬고 소금 쳐서 요리하기 좋게 해 주는

덕이아지매의 모습이

울 엄마에 비하면 왠지 부럽다고 해야할 까..

울 엄마는

맨 날 천 날 돌아가신 아버지가 했던

얼음 리어카를 누가 소띠 아니라 할까봐

서무서마(남자)처럼 거칠게 밀고 다닐 줄 알았지

저렇게 자리 잡고 앉아

제 몫 자리 하나 챙겨볼 줄은 왜 몰랐을까 하고 ...

.

상인회일을 하면서부터

그 곳 앞 임원인 사무국장의 가게가 있어서

자주 사무실일로 들락날락 거리면서

인사만 하고 지내었는데..

어느 날

“어머이~·

저 어릴 때 여기 지하 회 센타에 경매 받아놓은 하꾸(생선나무상자)

리어카에 가득 담아 배달했던


‘물새야 왜 우느냐’가 18번이었던 김갑조씨 큰 딸임미더.

기억하겄음미꺼?~~


생선을 손 보다가(다듬다가) 다시 한번 더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만


“아~ 그래~

그러코 보니 얼굴색이 나네~

내 너거 엄마하고 한 갑장아이가 ~ 소띠~


지금도

너거 엄마 목발짚고 시장바구니 끌고 지나가다가

마주 치면

“ 갑장아 ~하고 지나간다..

근데 요새는 너거 엄마가 잘 안보이데~~


추산동,,창동, 부림 시장의 곳곳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

기억하고 싶은 기억들이 
숨어 있다.

요즘들어 다시,
시간의 새김질을 하면서
이런 공간들, 사람들이 다가오는
새로운 느낌들을

약하게 혹은 다르게 반복함으로써

추억과 상처의 흔적들을
소산시키거나 극복하려는
스스로의
움직임이 엿 보인다...

내일은 구월 초 닷새.

엄마생신이다.

맨 날 보면 으르렁 대고 짜증내는 나..,,

여태 한 번도 국 한그릇 못 끓여준 못된 나.,.


오늘따라
왠지
내일 아침은
미역국에

짭조름한 조기 굽고, 나물 서너가지 무치고 해서

아침에 한 상 채려 올라가볼까 싶다....
잠자기 전까지
아무런
마음의 요동이 일어나지 않는 다면.....
 



Posted by 창동아지매(골목해설사)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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